[내일을 열며-이기수] 사이버 문상시대를 열자

입력 2014-06-26 02:28

53만1258명과 26만7468명. 25일 오후 2시 현재까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의 세월호 희생자 사이버 분향소에 접속, 추모의 글을 올린 사람들 수다. 사이버 성묘(省墓)에 이어 사이버 문상(問喪) 시대가 오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골든에이지포럼(회장 김일순 연세대 명예교수)은 25일, 간소하고 건전한 장례문화 정착 캠페인의 일환으로 다음 달 1일부터 ‘사이버 장례식장’(www.efuneral.co.kr)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를 위해 이날 오후 서울YWCA(명동) 강당에서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건전 장례문화 확산’이란 제목으로 세미나도 열었다.

알다시피 사이버 공간이란 인터넷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사회적 관계 서비스) 통신망을 통해 대량의 정보가 교환되고 공유되는 공간을 가리킨다. 이 가상공간은 컴퓨터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열리며 현실 세계에서와 같이 실시간 대화, 편지 주고받기, 쇼핑과 은행 업무는 물론 가상의 화폐를 이용한 상거래, 휴식과 여가를 즐기기 위한 다양한 문화 및 교육 활동까지 가능하다. 사이버 문상운동은 바로 이 공간을 건전 장례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활용하자는 것이다.

“참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찌 이리도 무심합니까. 애들아 많이 미안하다. 좋은 곳에 가서 편안히 잠드소서.” “제 기억 속에서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도록, 나 자신과 다시 한번 약속합니다. 또한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 먼저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겠습니다.” “벌써 두 달이 지났어요. 잠시 잊고 살기도 했고 거기서는 이제 정말 편히 지내세요. 잊지 않을 거예요.” 세월호 희생자 사이버 추모 공간에 네티즌들이 남긴 메시지 중 일부 내용이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이보다 더 간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사이버 공간은 그런 면에서 어느덧 현실 세계의 장례 비즈니스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자칭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 윤영호 서울대병원 통합암케어센터 교수는 “전 세계에서 병원에 장삿속의 장례식장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선 병원 내 주요 혐오시설로 취급하면서도 장례식장을 주요 수입원 가운데 하나로 관리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조회사들이 유족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한다는 보도를 접하는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이버 문상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사이버 장례식장은 여러모로 이점이 많아 보인다. 우선 갖가지 사정으로 문상이 불가능한 직장인, 특히 원거리의 친지와 지인에게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조의를 표할 기회를 제공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상가를 찾지 못하게 됐을 때 사이버 장례식장이 있다면 쉽게 문상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장례식장은 또한 장례 상황을 지인들에게 알리는 창구 역할과 함께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가상 계좌를 열어놓을 경우 지인의 손을 빌리는 수고를 따로 하지 않고 조의금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밖에 고질적인 조화 장식과 음식접대 등 번거롭고 고비용 구조의 장례문화를 일거에 없애 간소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달라진다.” 스코틀랜드의 정치개혁가이자 의사인 새뮤얼 스마일스(1812∼1904)의 말이다. 관습도 시대가 낳은 결과물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이버 문상 역시 우리의 관심과 지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정보기술시대, 21세기 세상이 요구하는 새 풍속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이 추진하는 사이버 장례식장이 간소하고 건전한 장례문화 정착을 주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게 되길 응원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