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부동산 규제완화 ‘약’될까 ‘독’될까

입력 2014-06-26 02:24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현재의 부동산 정책을 ‘감기에 걸릴’ 옷차림이라며 규제 완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부동산 시장이 한겨울에도 한여름 옷을 입는 이유가 있다고 보는 편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과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부동산 규제 완화가 한국의 고질적인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고르디오스의 매듭’이라고도 언급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난제를 박근혜정부 2기 경제팀이 어떻게 ‘잘라낼지’ 주목된다.

25일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 정부가 LTV와 DTI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면 가계부채 비율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 후보자가 인선 직후 자금차입 규제 합리화를 강하게 시사한 데 따른 진단이다. 피치는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이미 160%를 초과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훨씬 높은 수준”이라며 부채상환 능력이 악화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가계부채 증가 때문에 규제 완화의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보는 건 피치뿐만이 아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노무라증권은 “부동산시장 회복 노력이 건설투자에는 긍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민간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최근 전망했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가계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상황임을 지적한 것이다. 노무라증권은 “세입자는 주택비용 지불을 위해 여타 소비를 줄여야 한다”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점, 양도소득세 부담이 큰 점 역시 부동산시장 회복에 따른 부(富)의 효과를 제한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권에 비해 더욱 가파른 비은행권(저축은행·농협·신협·우체국·연기금 등) 대출 증가세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비은행권 대출은 순자산 여력이 열악한 가구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은행권보다 건전성도 떨어져 가계부채의 질적 문제로 지적받아 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비은행권 대출은 486조2731억원을 기록, 은행권(481조2805억원)보다 크다. 은행권보다 낮게 유지되던 비은행권 대출은 지난해 4분기 은행권을 추월한 뒤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이러한 가계부채 문제가 그나마 관리 가능토록 유지한 장치가 LTV 등 부동산 관련 규제라는 점은 최경환 경제팀의 고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영일 연구위원은 이날 “부채 가구의 순자산 여력이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LTV 규제가 주요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 LTV 비율의 평균은 50% 정도를 기록하고 있는데, 영국 미국 프랑스 캐나다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LTV 규제 상한은 80%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한 여론은 거의 반반이다. 지난 17일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부동산시장 관련 대국민 인식’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53.3%는 DTI 폐지에 반대했고 46.7%는 찬성했다. “하우스푸어가 되더라도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응답 비율은 51.6%였다. 부동산 활성화도 필요하고 가계부채 관리도 필요하다면, 결국 늘어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도록 가계소득을 늘릴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점점 설득력을 발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