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의 손오공이 뛰놀던 곳 ‘서역(西域)’, 중국 신장(新疆)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찾았다. 승효상 등 당대의 건축가 10여명과 함께한 실크로드 건축양식 취재차였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베이징에 도착한 후 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烏魯木齊)까지는 시안(西安)을 거쳐 무려 40여시간 기차를 타야 했다. 2층 침대의 기차 안에서 중국인들은 기차 밖의 일상을 그대로 이어갔다. 밥을 해먹기도 하고 술 마시며 놀다가 밤에는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목적지가 먼 사람은 4∼5일씩 기차를 탄다고 했다. 절약하기 위해 침대표가 아닌 좌석표를 끊어 며칠씩 앉아 가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신장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은 일본인과 유럽인이 대부분이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굴된 둔황의 막고굴, 서유기의 주 무대인 투루판과 고대 교하국의 도시인 교하고성, 붉게 보이는 암벽으로 유명한 홍산, 전통시장인 바자르, 천산 고지대의 호수인 천산천지 등 우루무치 인근의 실크로드 유적지를 탐방하는 동안 한국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중국의 비단, 종이, 도기와 서방의 보석, 유리, 융단이 교류되던 우루무치는 지금 중국의 화약고다. 이슬람을 믿는 위구르인들은 끊임없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중국 정부는 초강경 진압을 되풀이한다. 1000년 이상 이곳의 주인으로 살아오던 위구르인들은 200여년 전 자신들을 정복한 중국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중국의 민족동화정책은 점점 강화되고 이들의 저항은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위구르인들의 분노는 테러로 표출됐다. 2009년 7월 5일 197명이 숨지고 1700여명이 부상한 우루무치 유혈사태가 대표적이다. 최근 이들의 저항은 신장을 벗어나 베이징 등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6일 그동안 신장에서 발생한 테러 가담자 1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우루무치 유혈사태 5주기를 앞두고 테러 기도를 차단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요즘 한국에서 우루무치 가는 길은 수월해졌다. 2004년부터 매년 5∼10월 동안 인천∼우루무치 직항로가 운행되고 있다. 수십 시간의 기차를 타지 않고도 쉽게 다녀올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그곳은 선뜻 가기 어렵다. 우리 외교부는 신장자치구에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렸다. 동서양의 문화와 문명이 교차되던 비단길의 중심 우루무치에 언제 평화가 깃들까.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우루무치
입력 2014-06-26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