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씨의 아버지(83)는 3년째 말기 전이성 전립선암을 앓고 있다. 전립선암은 80∼90%가 수술을 통해 완치되지만 수술시기를 놓치거나 수술적 치료 시행 후에도 암이 계속 진행되는 경우 평균 생존기간이 약 11개월에 불과한 치명적인 질환이다. 정씨의 아버지가 평균 생존기간보다 오랫동안 병을 관리·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치료제 ‘자이티가’의 영향이 크다. 이 치료제는 세포독성 항암제인 도세탁셀 치료까지 실패한 말기 전이성 전립선암 환자들의 생존기간 연장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씨의 아버지는 이 치료제를 통해 전립선특이항원(PSA, 전립선암 선별이 이용되는 종양표지자) 수치가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질 만큼 효과를 본 것이다.
정씨는 아버지가 치료제 효과를 보는 것은 반갑지만 걱정도 크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제 복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이티가(성분명 아비라테론)는 지난해부터 보험급여등재절차를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사에서 비급여 판정을 받은 후 바로 위험분담협상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 만약 올 8월까지 이 치료제의 급여 등재가 되지 않는다면 정씨는 아버지의 약 복용을 멈춰야 할지도 모른다. 정씨는 “지난 4월 전화로 문의해 봤더니 급여 등재에 120일 정도 걸린다기에 그 기간 동안의 약값만 마련했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확인해 보니 연기됐다고 한다”며 급여 적용 과정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가계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자이티가는 기존 호르몬 치료제와 달리 안드로젠이 생성되는 경로를 모두 차단하는 항 안드로젠 기전(Androgen Biosynthesis Inhibitor, ABI)의 치료제로 1일 1회만 복용하는 경구제이기 때문에 입원 치료가 필요 없는 등 복약 순응도가 우수하고, 호르몬 치료제이기 때문에 기존의 항암치료처럼 혈액학적 독성으로 인해 조혈작용을 돕는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지 않아 경제·신체적인 이점이 있다. 더 이상 치료 대안이 없었던 말기 전립선 암환자들에게 생명연장 효과와 더불어 우수한 안전성을 입증했는데, 실제로 기존 남성호르몬 차단요법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항암화학요법에도 실패한 환자 11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자이티가는 프레드니솔론과 병용했을 때의 평균 생존기간이 15.8개월로 나타나 대조군(위약+프레드니솔론 군)보다 평균 생존기간을 4.6개월 더 연장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심평원의 자이티가 비급여 판정 근거는 ‘현재 동일 적응증에 사용할 수 있는 약제가 등재되어 있으므로 대체 가능성을 고려하면 진료상 반드시 필요한 약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립선 암세포가 다른 조직으로 퍼지는 전이성 전립선암의 경우 남성호르몬(안드로젠)이 암세포의 증식을 돕기 때문에 이를 차단 또는 억제하는 남성호르몬 차단요법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러한 치료를 받은 후 1∼2년이 지나면 전립선 암 종양이 남성호르몬 차단요법에 반응하지 않게 되어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렵게 된다.
문두건 고려대 구로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다른 치료의 효과가 없어지게 되면 항암화학요법을 사용하는데, 높은 연령과 부작용 등으로 그마저도 사용할 수 없을 경우 약가는 비싸지만 자이티가를 사용한다”며 “정씨 부친의 경우 1차 치료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한 뒤 호르몬 저항으로 인해 자이티가를 사용했으며 그 결과 PSA수치와 전이도 전체적으로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또 환자의 경제적 부담과 관련해 “급여기준이 너무 경제논리로 돼 있다는 문제가 있다. 치료제의 비급여 문제는 환자와 보호자의 갈등도 유발하는데 자식 입장에서는 비싸도 사용해야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특히 고연령자의 경우 자신이 얼마나 산다고 비싼 약을 쓰냐며 거부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며 “이 때문에 의료진으로서도 환자의 경제력을 고려해 처방해야 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어 결국 돈 있는 사람은 쓰고 돈 없는 사람은 못 쓰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중증질환의 고액 진료비를 빈곤전락의 주요인으로 간주해 진료비 부담이 큰 중증질환자의 부담 경감에 초점을 맞춰 보장성 강화 방안을 수립해 추진 중인데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에도 불구하고 법정본인부담금 혹은 비급여 본인부담금의 증가로 인해 건강보장 보장률은 정체돼 있는 상황이다.
자이티가뿐만 아니라 △레블리미드(다발골수종 표적치료제) △얼비툭스(대장암 표적치료제) △아바스틴(대장암 표적치료제) △잴코리(베소세포폐암) △미팩트주(골육종) △뉴라스타프리필드시린지주(호중구감소증) △젤보라프(흑색종) △심벤다(백혈병) △자카비(골수섬유증) △길레니아(다발성경화증) 등 40여개의 약제들이 4대 중증질환과 관련돼 있는데 이 중 보험급여를 받는 치료제는 레블리미드, 얼비툭스, 아바스틴, 뉴라스타프리필드시린지주 등 소수에 불과하다. 등재에 성공한 치료제들의 등재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최근 급여 승인을 받은 대장암 표적치료제 얼비툭스의 경우는 국내 출시 10년 만이었다. 레블리미드 역시 국내 출시된 후 5년간의 도전 끝에 지난 3월 가까스로 급여 등재에 성공했다.
조민규 쿠키뉴스 기자 kioo@kukimedia.co.kr
[진료 현장에서-약값 없어 치료 포기하는 암환자들] 건보 적용 안되는 비싼 치료제 계속 써야하나…
입력 2014-07-01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