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우리에게 보내주신 그 아들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증언했다(사 9:6). 사도 요한은 그분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시고,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증언한다(요 1:2∼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러나 이 땅에 오실 때 그 전지전능을 다 내려놓고 ‘순종하는 아들’로 오셨기 때문에 그가 순종해야 할 ‘아버지의 뜻’을 묻기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신 것이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시고(막 1:35),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으며(마 14:23), 기도는 그분의 습관이었다(눅 22:39). 그는 제자들 중에서 열두 사도를 택할 때에도 산에 올라가 밤이 새도록 기도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2∼13)
그리고 그 다음에 예수께서 택한 열두 사도의 이름이 나온다. 그 열두 사도의 이름을 살피다 보면 하나님께서 밤새도록 기도한 아들에게 뭐라고 응답하셨을지가 궁금해진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열두 명의 명단을 일일이 불러주셨을까? 아무래도 그렇게 하시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열두 명의 명단에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눅 6:14∼16)
만일 하나님께서 그 열두 명의 명단을 다 불러주셨다면 아들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를 지명한 것은 ‘오판’ 또는 ‘실수’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판 또는 실수하는 분이 아니시다. 혹시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려고 배반할 인물을 미리 사도 명단에 계획적으로 끼워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도 납득하기 어렵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시 25:8)
그렇다면 하나님은 밤이 새도록 기도한 아들에게 뭐라고 응답하신 것일까? 아마도 아들은 기도하면서 ‘말씀’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들이 흑암에 행하던 백성(사 9:2)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 상황이 지난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진격할 때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당시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7∼8)
그로부터 사흘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을 건넜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강에 들어서자 강물이 멈춰 섰고, 백성들이 다 건너자 하나님은 강물이 멈춰 있는 그곳에서 열두 개의 돌을 가지고 나오게 하신다.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곳에 두게 하라.”(수 4:2∼3)
여호수아는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가에 세우고, 그것으로 그들이 요단을 어떻게 건넜는지 후손들에게 전할 표징으로 삼았다.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수 4:21∼22)
그리고 그 표징은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 4:24)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제삼일’에 요단을 건너기로 결정하고 열두 명의 증인을 택하여 열두 돌을 세우게 했던 것처럼 예수께서는 장차 ‘제삼일’에 살아나(마 16:21) 부활의 첫 열매(고전 15:20)가 되시는 그분의 증인 열두 명을 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모든 계층에서 증인을 택하라고 하셨을 것이다.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다.
“빌립과 바돌로매(나다나엘)와.”
두 사람의 직업은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농업이었을 것이다.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마태 즉 레위는 유대인들에게 증오와 멸시를 당하며 살던 세리였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신분을 알 수 없으나 마태의 부친도 알패오였던 것으로 보아 마태의 아우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모두 ‘소외된 자’를 대표하고 있었다. 교회의 전승대로 ‘도마’가 배를 건조하는 기술자였다면 건축기술자였던 예수와는 직업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로마의 지배를 받는 유대에는 다섯 당파가 있었다. 제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두개당’과 율법주의로 민심을 이끄는 ‘바리새당’이 있고, 과격한 무력 항쟁으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자는 셀롯 즉 ‘열심당’과 쿰란의 동굴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엣세네당’ 그리고 헤롯을 추종하는 ‘헤롯당’도 있었다. 셀롯인 시몬은 공개적으로 열심당원임을 밝힌 자였고, 야고보의 아들 유다(다대오)는 그의 단짝 친구였으며 가룟 유다는 선동적인 이념에 집착하던 자였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요 12:6)
집권층인 사두개당과 헤롯당을 제외한 모든 백성 즉 유대인, 갈릴리인을 막론하고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 즉 메시아가 와서 로마 제국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리새당과 열심당뿐 아니라 엣세네당도, 나사렛 사람들도, 그리고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능력을 지닌 예수께서 말씀과 치유와 귀신 쫓는 데만 전념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 모친과 동생들이 찾으러 왔다고 하자 그분이 말씀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3∼35)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7)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입력 2014-06-27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