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 그윽한 남도 누정(樓亭)은 힐링의 공간이다. 갈라지고 비틀린 기둥으로 세월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는 누각과 정자는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매력을 발산한다. 비록 찾는 사람 없는 쓸쓸한 공간이지만 퇴락한 누정에 더욱 정감이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옛날 자연을 벗해왔던 시인묵객들의 사색과 풍류가 해묵은 공간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전남 화순의 누정 여행은 남면 사평리에서 시작된다. 사평은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와 그 시를 모티브로 한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평에는 사평역이 없다. 문학적 상상력이 창조한 실재하지 않는 역일 뿐이다. 하지만 사평역은 기다림과 그리움을 상징하는 간이역의 대명사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기적을 울리고 있다.
화물열차가 하루 한 차례 화순탄광의 무연탄을 실어 나르는 화순선과 헤어져 사평천으로도 불리는 외남천을 거슬러 오르면 임대정(臨對亭)과 연못, 그리고 원림(園林)이 녹음 속에서 고즈넉한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임대정의 주인은 조선 철종 때 병조참판을 지낸 사애 민주현(1808∼1882)으로 1862년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해서 지은 별서(別墅)가 임대정이다.
한국의 여느 정자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벗한 임대정은 정자 가운데에 중재실(中齋室)로 불리는 방을 두고 있다. 정자 앞 연못에는 ‘세심(洗心)’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오랜 연륜을 자랑이라도 하듯 푸른 돌이끼를 덮고 있다. 세심은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풍류를 즐기는 임대정 주인의 마음가짐을 엿보게 한다.
정자가 얹힌 절벽에서 인공연못으로 내려가는 조붓한 산책로는 사색의 공간이다. 바람에 댓잎 스치는 소리가 시원한 어둑어둑한 산책로 끝에는 홍련과 백련이 꽃을 피울 연못에 화순의 푸른 하늘이 담겨 있다. 연못 안 인공섬에 심어진 배롱나무의 붉은 꽃잎이 떨어져 수면을 수놓는 8월의 원림과 단풍이 울긋불긋한 가을의 원림은 임대정을 대표하는 풍경화이다.
광주, 나주, 담양과 이웃한 화순에는 43개의 누정이 전해오지만 각종 문헌에 이름을 올렸으나 현존하지 않는 누정도 113개나 된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경전선 철길이 영산강 지류인 지석강을 건너는 능주면 관영리의 영벽정(映碧亭)은 화순을 대표하는 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2층 누각인 영벽정은 능주팔경 중 하나로 우물천장의 단청이 눈이 시릴 정도로 화려하다. 거울 같은 지석강물에 투영되어 비치는 맞은편 연주산의 경치가 아름다워 점필재 김종직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
영벽정에서 경전선 철길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 이양면 강성리에서 지석강변에 위치한 송석정(松石亭)을 만난다. 임대정처럼 절벽 위에 위치한 송석정은 선조 때 훈련원첨정을 지낸 양인용이 당쟁으로 정계가 혼란해지자 낙향해 시문으로 벗과 담소하며 여생을 즐기던 곳으로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송석정을 둘러싼 소나무 36그루는 산림유전자로 강변에서 올려다보는 송석정은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동면 서성리의 서성저수지 안에 위치한 환산정(環山亭)은 백천 류함이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 굻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향해 은거하던 정자이다. 환산정은 본래 깊은 산속에 있었으나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저수지가 조성되면서 ‘육지 속의 섬’이 되었다. ‘은둔의 정자’ ‘비밀의 정원’으로 불리는 환산정 앞에는 노송 한 그루가 비스듬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환산정 입구에 위치한 허름한 찻집은 겉모습과 달리 운치가 있다.
화순의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에 걸쳐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 크고 작은 절벽들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물염적벽은 병풍처럼 깎아지른 기암괴석과 노송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비단결 같은 강줄기와 주위 풍광을 감싸안은 듯 포근하고 고색창연한 물염정(勿染亭)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염정은 물염 송정순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정자로 ‘물염’은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는 뜻이다. 정자 안에는 김인후, 이식, 권필 등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은 시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물염정의 포인트는 울퉁불퉁한 배롱나무 기둥 하나로 보수공사 때 교체했는데 언제부턴가 정자보다 이 기둥이 더 명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물염정은 김삿갓이 즐겨 찾던 정자로도 유명하다. 1850년에 두 번째로 화순을 찾은 김삿갓은 52세 되던 1857년 아예 동복에 안주하면서 방랑생활을 마감한다. 그리고 1863년 동복면 구암리의 정시룡 사랑방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수많은 시를 지었다. 물염정 옆에는 김삿갓 동상이 시비에 둘러싸인 채 물염적벽을 응시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화순 누정 여행은 상수원보호구역 안에 위치해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노루목적벽에서 끝난다. 흔히 화순적벽으로 불리는 100m 높이의 노루목적벽은 4개 적벽 중에서도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 1985년 동복댐이 만들어지면서 50여m의 깎아지른 절벽이 물에 잠겼지만 그 위용은 여전하다.
상수원보호구역 초소에서 보산적벽까지는 산길로 5㎞. 산딸기 익어가는 산길을 몇 차례 굽어돌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호수처럼 잔잔한 동복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노루목적벽 맞은편에 위치한 보산적벽 위의 평평한 구릉에는 망향정이 하얀 띠풀을 배경으로 물에 잠긴 고향을 응시하고 있다. 망향정은 댐 건설 후 물에 잠긴 월평마을 등 15개 마을의 실향민을 위해 세운 정자.
망향정에서 대숲 사이로 난 수풀길을 내려가면 노루목적벽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망미정(望美亭)이 반긴다. 망초꽃에 둘러싸인 망미정은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정지준이 인조가 청태종 앞에 무릎 꿇었다는 소식에 분개해 정자를 짓고 은둔생활을 했던 곳으로 수몰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망미정에는 반가운 글씨가 하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추협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던 1986년에 쓴 현판으로 단아하면서도 힘찬 필체가 의병장을 기리는 민주화 투사의 기개를 보는 듯하다.
화순=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물염정 배롱나무 기둥은 김삿갓 기억할까
입력 2014-06-26 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