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물론 여당 내 퇴진 요구에도 요지부동이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를 결심하기까지 여권은 물밑에서 설득과 압박, 침묵 사이를 오가며 분주히 움직였다. 문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게끔 하되 친일 역사관 논란 등에 대해선 충분히 소명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면서 인사 파문의 출구를 찾았다는 후문이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매우 안 좋았고 당에서도 인사청문회 통과는 힘들 것이란 부정적 의견이 대세였다”면서 “자진 사퇴는 예고된 수순이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지명 철회)을 내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문 후보자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리면서 최대한 예우를 갖춘 것”이라며 “조금 더디더라도 원만한 해결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은 지난 10일 박 대통령이 언론인 출신의 문 후보자 카드를 내놓자 국민 눈높이와 전문성에 초점을 맞춘 인사라며 환영했다. 야당과 언론 등을 통해 문 후보자의 과거 칼럼, 교회 발언 등이 알려지고 자질 논란이 불거졌지만 적극 엄호했다. 부적격 여부는 청문회를 연 뒤 국민들이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친박(친박근혜) 좌장이자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서청원 의원이 지난 1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기류가 급변했다. 당시 새누리당 주요 당직자는 “문 후보자에 대한 당의 분위기는 일단 고(go)였는데 다시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고 입장 변화를 시사했다. 청문 절차를 지키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던 이완구 원내대표도 “일정한 방향을 정해놓고 가기보다는 의원 한 분 한 분의 의견을 수렴해나가겠다”고 퇴로를 열어뒀다. 이후 새누리당 공식 회의에서 문 후보자에 대한 발언은 자취를 감췄다. 서 의원을 비롯해 김무성 이인제 홍문종 의원 등 전당대회 출마자들은 자진 사퇴 또는 청문회 전 적극 해명을 요구하고, 당 지도부는 침묵을 유지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졌다. 당내에선 문 후보자 문제를 길게 끌었다가는 국정 파행이 장기화되는 것은 물론 7·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도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런 분위기를 문 후보자에게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박 대통령이 침묵 모드를 이어가고, 때마침 문 후보자 조부가 국가유공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잠시나마 청문회 강행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文 불가론’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뒤였다.
새누리당은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두고 “의회주의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붕괴”라고 밝혔다.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 책임론에 대해선 엇갈린 목소리가 나왔다. 서 의원은 당원간담회에서 “비서실장이 검증하는 분은 아니다”라면서 선을 그은 반면, 김 의원은 기자들에게 “그 (인사를) 담당한 분은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문창극 총리후보 사퇴] 文 명예회복 위한 버티기에 여권, 압박·침묵으로 ‘결심’ 유도
입력 2014-06-25 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