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 사퇴] 文 명예회복 위한 버티기에 여권, 압박·침묵으로 ‘결심’ 유도

입력 2014-06-25 02:35
야당은 물론 여권 내의 퇴진 요구에도 요지부동이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끝내 24일 자진사퇴를 결정하기까지 여권은 물밑에서 설득과 압박, 침묵 등 여러 수단을 총동원했다. 문 후보자가 본인을 둘러싼 역사관 논란 등을 소명해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면서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게끔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인사 파문의 출구를 찾았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후보자 스스로 총리 임명이 힘든 상황이란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버텼던 건 명예회복에 대한 의지가 굉장히 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문 후보자는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청와대나 여당에 억울함을 호소해왔다”면서 “하지만 여론과 언론, 당의 입장이 청문회 불가 방향으로 흐르자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친박(친박근혜) 의원은 “문 후보자가 지명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을 생각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인사청문회 통과가 난망하니까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10일 문 후보자 지명 이후 ‘국민 눈높이’와 ‘전문성’에 초점을 맞춘 인사라며 즉각 환영했다. 이후 야당과 언론을 통해 문 후보자의 과거 칼럼, 교회 발언 등이 논란이 되자 법에 규정된 인사청문 절차를 내세워 문 후보자를 적극 엄호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친박(친박근혜) 좌장이자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서청원 의원이 사실상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여권 내 기류가 급변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당시 “문 후보자에 대한 당의 분위기는 일단 고(go)였는데 내부 논의의 촉매제가 됐다”고 입장 변화를 시사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일정한 방향을 정해놓고 가기보다는 의원 한 분 한 분의 의견을 수렴해나가는 과정을 밟겠다”고 퇴로를 열어뒀다. 이후 새누리당 공식 회의에서 문 후보자에 대한 발언은 자취를 감췄다. 서 의원을 비롯해 이인제 홍문종 의원 등 다른 당권 주자들은 자진사퇴 요구에 동참하고, 당 지도부는 침묵을 유지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한동안 지속됐다. 당 내부에선 문 후보자 문제를 길게 끌었다가는 국정 파행이 장기화되는 것은 물론 7·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도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가 점점 커졌다.

박 대통령이 지난 21일 귀국해서도 문 후보자 거취 문제를 언급하지 않자 당내 기류가 또 한번 미묘한 변화를 보였다. 문 후보자가 최대한 명예회복을 할 수 있게끔 시간을 주는 것이라는 해석과 청문회를 강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동시에 나왔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자진사퇴 불가피성을 설명했던 홍 의원은 “보수 원로들의 성명 뒤 청문회 가자는 여론이 늘고 있다”며 다시 청문회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여권 관계자는 “이제 남은 건 차기 총리 후보가 누가 될 것이냐의 문제인데 과연 누가 하겠다고 나설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