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부르는 음주… 발병 위험 7.4배 ↑

입력 2014-06-25 03:38

서울 동작구에 사는 A씨(75)는 넷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잃었다. 이후 네 자녀와 점차 소원해져 벌써 10년째 연락이 끊겼다. 그는 하루 일과를 대부분 혼자 보내왔다. 1주일간 집 밖에 나가지 않을 때도 있고, 한마디 말할 기회가 없는 날도 많았다. 운동은커녕 건강검진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외롭게 지내다 결국 3년 전 치매 판정을 받았다.

서울 서대문구 B씨(73)의 인생은 늘 술과 함께였다. 20대 때부터 1주일에 사나흘은 최소한 소주 반병 이상을 마셔왔다. 만취 상태로 차를 몰다 교통사고를 낸 적도 있다. 항상 술에 취해 있어 가족과 이웃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늘 외톨이였다. 지난해 8월 알코올성 치매 판정을 받았다.

말 상대가 있었다면, 운동을 자주 했다면, 술을 덜 마셨다면 두 사람은 치매에 걸리지 않았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런 잠재적 치매 환자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생활 속 치매 위험요인에 적극 대응키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24일 국무회의에서 조기 예방에 중점을 둔 ‘생활 속 치매 대응 전략’을 보고했다. 1차 타깃은 술, 운동 부족, 고독, 고혈압·당뇨다.

술을 자주 마시면 치매 발병 위험이 7.4배나 높아진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미아 키비펠토 교수의 연구를 통해 도출된 수치다. 복지부는 치매에 치명적인 음주를 줄이기 위해 대학교 등 공공시설에서 술 판매와 음주를 금지키로 했다. 이렇게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면 대학 캠퍼스에서 술판을 벌이거나 축제 때 주점을 열 수 없게 된다. 대중교통과 옥외광고물, 오전 7시∼오후 10시 TV·라디오에도 술 광고가 금지되며, 모든 술 광고에는 건강경고 문구가 의무화된다.

보건복지부는 8월까지 노인을 위한 치매예방운동법 개발을 완료하고 적극 보급하기로 했다. 알츠하이머의 13%는 운동 부족 때문이라는 연구결과처럼 규칙적인 운동은 치매 예방에 필수다. 예방운동법을 전국 경로당과 노인복지관 등에 보급하기 위해 운동강사 출신 노인 3000명을 채용한다.

치매 위험을 50% 높이는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관리도 강화된다. 올해 하반기부터 만성질환자들이 운동 식단관리 등을 스스로 할 수 있게 지원하는 '지역사회 1차의료 시범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지난해부터 시행돼온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와 고혈압·당뇨 등록관리사업도 계속된다.

2012년 치매유병률 조사결과 혼자 사는 노인의 치매 위험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9배 높았다. 정부는 이런 독거노인들에게 '사회적 가족'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우선 생활관리사가 노인을 주 1회 이상 방문하는 '돌봄서비스'를 확대하고 75개의 민간기업이 독거노인과 1대 1 결연을 해 후원하는 '사랑잇기사업'도 확대된다. 도시의 독거노인에게 1명 이상의 친구를 만들어주는 '독거노인 친구 만들기' 사업, 농촌의 독거노인들이 함께 생활하게 하는 '공동생활홈' 사업도 병행한다.

60세 이상 노인 4명 중 1명은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갖고 있다. 이 장애를 일찍 발견해 치매로 발전하는 걸 2년 정도 늦출 경우 20년 뒤 치매에 걸려 있을 확률은 크게 낮아진다. 또 치매를 조기 발견해 약물치료를 하면 5년 뒤 요양병원 신세를 지게 될 확률도 55% 줄어든다.

복지부는 60세 이상 노인 168만명(2013년 기준)을 대상으로 경도인지장애 조기 검진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치매검진 서비스도 내년부터 70세 이상 노인에게 2년마다 제공할 계획이다. 스스로 치매 위험을 파악할 수 있게 스마트폰과 PC용 '치매체크' 프로그램도 개발해 보급한다.

다음 달부터는 경증 치매환자도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치매특별등급제'가 시행된다. 5만여명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간병으로 지친 치매환자 가족을 위해서는 환자를 단기보호시설에 맡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치매가족 휴가제'를 운영한다. '치매상담 콜센터'에선 환자 가족을 위한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치매종합정보키트'도 제작해 보급하기로 했다.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인요양시설과 요양병원의 시설·인력기준도 강화된다. 노인요양시설에는 비상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쉽게 대피할 수 있도록 출입문 '자동개폐장치'가 의무화된다. 이르면 10월부터 신축 요양병원은 반드시 스프링클러와 자동화재속보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노인요양시설의 야간인력 필수 배치기준도 마련된다.

그러나 이런 대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양대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는 "예를 들어 공동생활홈의 경우 농촌 노인들은 각자 생활해 온 집에서 살고 싶어 해 제대로 운영될지 의문"이라며 "노인과 치매 환자가 닥친 상황과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