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문턱서 다시 삶을 허락받은 30인 이야기

입력 2014-06-25 02:58
지난 19일 서울 연세의료원 본관 6층 예배실에선 ‘쿵쿵’ 출판 감사예배가 열렸다. 저자 고진하 시인을 비롯한 책 속의 주인공 환우들과 가족이 참석했다. 허란 인턴기자
쿵쿵에 소개된 김미원(사진 왼쪽), 민형자씨가 자신들의 쿵쿵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쿵쿵쿵. 책을 읽는 동안 가슴속에서부터 메아리쳐오는 이 소리는 뭘까. 그것은 우리 몸에서 뛰는 심장 소리다. 꺼져가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기쁨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 절망에 빠진 이웃들이 다시 희망을 찾고자 일어서는 용기이기도 하다. 쿵쿵은 이렇듯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책은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살아난 30명의 기적 같은 사연이 담겨 있다. 아나운서 출신의 차인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석좌교수는 ‘B세포 미만성 악성림프종양’으로 1년 반 가까이 암병동에 머물며 아홉 차례에 걸쳐 항암표적주사와 약물치료를 병행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간호사인 조민정씨는 출근길 교통사고로 ‘생존가능성 1%’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 김윤희씨는 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뇌는 없고 물주머니만 있는 ‘전전뇌증’을 가진 아기 은설이를 키우고 있다.

책 속 주인공들은 병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며 성경 속 욥을 많이 떠올렸다. 피부와 점막에 수포를 형성하는 만성적 질환 ‘천포창’으로 병원을 찾은 서현희 사모도 그랬다. 남편은 아내에게 욥기를 읽어줬다.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욥기 2:7∼8) 서 사모는 말한다. “그래도 욥은 나보다 낫다. 나는 긁기는커녕 어디 닿기만 해도 이렇게 칼로 도려내듯 아픈데, 욥은 옹기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기라도 하지 않나.” 남편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욥기의 한 구절을 더 읽는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지니라.”(욥 2:6)

악성종기로 고통 받게 하면서도 생명만은 절대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신 하나님은 서 사모를 비롯한 주인공들에게 은총을 베푸셨다. 이들은 수차례 수술과 힘든 재활훈련을 거쳤다. 그렇게 다시 뛰는 생명의 북소리 ‘쿵쿵’을 들으며 ‘덤’으로 받은 그 생명을 나누겠다고 말한다.

“우리 인생에는 누구나 굴곡이 있게 마련이고, 나처럼 죽음의 문턱에 서야 하는 위기의 순간들을 겪을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겪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그냥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어 줄 수는 있다. 그래,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의 마음으로 내 곁을 지켜준 고마운 곁님들! 나는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하신다면, 나도 아픈 이의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하고 결심했다.”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고 있는 차 교수의 고백이다.

사실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기적의 순간을 바랐던 적이 참 많다. 그렇다면 기적은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 “기적이라는 게 이유를 알면 기적이라고 안 그래요. 이것 때문에, 혹은 저것 때문에 내가 나았다고 하면 기적이라고 안 하죠. 그러니까 기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픈 게 있고 나은 게 있는데, 아픈 것에서 나은 것 사이에 설명이 안 될 때, 그걸 기적이라고 하는 거지요. 누가 기도한다고 죽을 사람이 다 살아나는 건 아니에요. 기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요. 그런데 동시에 또 하나의 진실이 있어요. 틀림없이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을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당사자가 어머니든 전도사님이든, 아니면 의사나 간호사이든, 아무튼 누군가가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 드린 기도가 그 사람을 낫게 한다는 것도 또한 진실이라는 거예요.”(81쪽)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줄 때, 우리는 기적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책은 연세의료원 원목실에서 힘든 치료과정을 거치게 될 환우와 보호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어 기획했다. 30명의 사연을 모은 한인철 원목실장은 친구인 고진하 시인에게 집필을 의뢰했다. 수술은커녕 내시경 검사도 받아본 적 없던 고 시인은 책을 쓰기 위해 직접 환우와 가족들을 인터뷰했고, 병원에서 수술참관도 했다. 고 시인은 “병원은 단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장소인 것만이 아니라, 삶을 조건 없이 사랑하기를 배우고 죽음마저 받아들이는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수도장”이라며 그 안에 기적을 연출하는 하나님이 계심을 서문에서 밝혔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