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국정 구심점 상실… 장기 표류 불가피

입력 2014-06-25 03:36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6·25전쟁 64주년 국군·유엔군 참전유공자 위로연 행사에 참석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오전에 열렸던 문창극 총리 후보자 자진사퇴 기자회견 때문인지 얼굴이 어둡다. 이동희 기자

역사관 논란을 빚었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결국 자진 사퇴했다. 지난 10일 지명 이후 14일 만이다. 안대희 전 후보자에 이어 문 후보자까지 연달아 낙마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방향타를 잡지 못한 채 장기 표류 상태에 돌입했다. 총리 임명동의를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총리 후보자 2명이 연쇄 사퇴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정국'에서 헤어나기 위해 꺼내들었던 개각 카드는 총리 교체 불발로 사실상 원점 회귀했다. 정홍원 총리가 사의를 표한 지 59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구심점은 생겨나지 않고 있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인사 논란에 매몰되면서 정부는 극도의 인선 피로감에 휩싸여 있다. 여의도는 '정치 실종' 상태가 이어지는 형국이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버티기 모양새를 취하던 문 후보자가 전격 사퇴한 것은 더 이상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부담을 줘선 안 된다는 판단 때문으로 관측된다. 그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게 박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를 불러주신 분도 그분이고, 저를 거둬들일 수 있는 분도 그분"이라며 "그러나 제가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미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역대 정권에서 보듯 가장 강력한 국정 드라이브에 나서야 할 집권 2년차에 박근혜정부는 잇따른 인사 실패로 위기를 자초했다. 내각 공백과 신뢰 상실이 이어지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규제혁파 등 굵직한 국정과제에 '올인'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를 청와대가 허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우선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 스스로 내세웠던 '국가 대개조' 수준의 공직 개혁은 당분간 실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개각을 통해 정부 각 부처에 새로운 '개혁의 피'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민생 해결을 위한 정책은 물론 인적 쇄신도 이뤄내지 못하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사면초가에 몰린 박 대통령의 정국 수습책은 최대한 빨리 차기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난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이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등 장관급 인사들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총리 후보자 지명→정치권·언론의 검증→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2기 내각'이 추동력을 갖기까지는 길게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연이은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더욱 궁지에 몰릴 전망이다. 야당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하는 김 실장 책임론이 비등하고 있다. 새누리당 당권주자인 김무성 의원은 "두 번째 총리 후보가 낙마한 데 대해 (그 인사를) 담당한 분은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김 실장 중심의 기존 인사 시스템을 고수한다면 더욱 거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교체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새로운 인사 추천 및 검증 조직을 구성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