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 논란을 빚었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결국 자진 사퇴했다. 지난 10일 지명 이후 14일 만이다. 안대희 전 후보자에 이어 문 후보자까지 연달아 낙마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방향타를 잡지 못한 채 장기 표류 상태에 돌입했다. 총리 임명동의를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총리 후보자 2명이 연쇄 사퇴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정국'에서 헤어나기 위해 꺼내들었던 개각 카드는 총리 교체 불발로 사실상 원점 회귀했다. 정홍원 총리가 사의를 표한 지 59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구심점은 생겨나지 않고 있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인사 논란에 매몰되면서 정부는 극도의 인선 피로감에 휩싸여 있다. 여의도는 '정치 실종' 상태가 이어지는 형국이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버티기 모양새를 취하던 문 후보자가 전격 사퇴한 것은 더 이상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부담을 줘선 안 된다는 판단 때문으로 관측된다. 그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게 박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를 불러주신 분도 그분이고, 저를 거둬들일 수 있는 분도 그분"이라며 "그러나 제가 지명 받은 후 이 나라는 더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미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역대 정권에서 보듯 가장 강력한 국정 드라이브에 나서야 할 집권 2년차에 박근혜정부는 잇따른 인사 실패로 위기를 자초했다. 내각 공백과 신뢰 상실이 이어지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규제혁파 등 굵직한 국정과제에 '올인'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를 청와대가 허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우선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 스스로 내세웠던 '국가 대개조' 수준의 공직 개혁은 당분간 실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개각을 통해 정부 각 부처에 새로운 '개혁의 피'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민생 해결을 위한 정책은 물론 인적 쇄신도 이뤄내지 못하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사면초가에 몰린 박 대통령의 정국 수습책은 최대한 빨리 차기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난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이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등 장관급 인사들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총리 후보자 지명→정치권·언론의 검증→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2기 내각'이 추동력을 갖기까지는 길게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연이은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더욱 궁지에 몰릴 전망이다. 야당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하는 김 실장 책임론이 비등하고 있다. 새누리당 당권주자인 김무성 의원은 "두 번째 총리 후보가 낙마한 데 대해 (그 인사를) 담당한 분은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김 실장 중심의 기존 인사 시스템을 고수한다면 더욱 거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교체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새로운 인사 추천 및 검증 조직을 구성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뉴스분석] 국정 구심점 상실… 장기 표류 불가피
입력 2014-06-25 0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