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이 자신의 저서 ‘침묵의 봄’에서 DDT와 같은 살충제와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이 물과 인간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고발했을 때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 책으로 미국에서는 환경오염 논쟁이 촉발됐고 1969년 국가환경정책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는 DDT 사용이 금지됐다.
50여년이 지난 현재 DDT는 사용되지 않지만, 여전히 신경 독성분이 포함된 살충제는 해마다 수십억 달러어치가 팔린다. 이로 인한 생태계 오염이 식량 안보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의 데이브 골슨 서섹스대 교수를 비롯한 29개국 연구진은 24일(현지시간) 환경저널 ‘환경과학과 오염연구(Environmental Science and Pollution Research)’에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4년간 진행된 연구결과를 담은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전 세계에서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의 살충제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니코틴 계열의 신경 자극성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는 1980년대 개발돼 기존에 사용하던 살충제보다 독성이 덜해 지금까지도 애용되고 있다.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26억 달러(2조6400억원)어치가 거래되고 있다.
연구진은 살충제 사용으로 해충을 박멸했을지 몰라도 곡물 생산이 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살충제 사용으로 인해 오히려 꿀벌과 지렁이 같은 곤충이 생존에 위협을 받아 식량 안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꿀벌의 경우 살충제로 인해 비행능력이 떨어져 자연수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면역체계에도 이상이 생기고 학습 능력도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2일 꿀벌 개체 감소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도록 지시했다. 꿀벌은 미 농산물 자연수분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양을 정화하는 지렁이는 살충제에 노출될 경우 땅을 뚫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정화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장 마르크 본마틴은 “살충제 사용이 식량 생산을 보호하기는커녕 식량 생산이 가능한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살충제가 해충의 공격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해충의 공격이 없는데도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은 일부 곡물에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 사용을 3년간 임시로 사용 중지하도록 회원국에 요청했지만 영국은 거부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보고서에 대해 살충제 회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작물보호협회(CPA)의 닉 본 베스텐홀츠는 “연구결과가 선택적이며 살충제가 주는 광범위한 혜택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월드 이슈분석] 살충제의 역습… “생태계 파괴로 식량 공급 위협”
입력 2014-06-25 0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