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14일 만에 자진사퇴한 문창극 후보자의 24일 기자회견은 언론인 시절 본인이 썼던 한 편의 칼럼 같았다. 그동안 자신을 비판해 온 언론은 물론, 여야 정치권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은 짧을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13분 동안 이어졌다.
문 후보자는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3층 회견장으로 들어서자마자 90도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저 같은 부족한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쏟아준 데 대해 마음속 깊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40년 언론인 생활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 아프게 해드린 일이 없었는가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낮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곧바로 "외람되지만 몇 말씀 드리고자 한다"며 톤을 높였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 인권은 다수결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제도"라며 "이를 위해선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정치가 된다.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다"고 덧붙였다. 비판여론에 밀려 사퇴하게 된 상황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문 후보자는 "법치 모범을 보여야 할 곳은 국회다. 저의 일만 해도 대통령이 총리 후보를 지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다"며 "청문회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이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제게 사퇴하라고 했다"면서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 누가 법을 지키겠느냐"고 주장했다. 국민의 뜻으로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나아가 "언론의 생명은 진실보도"라며 "몇 구절을 떼어내 전체 의미를 왜곡한다면 진실보도가 아니다"라고 날을 세웠다. 문제의 교회 강연에 대해선 "저의 신앙에 따라 말한 게 무슨 잘못이 되느냐"며 "옥중서신을 통해 고난의 의미를 고백한 김대중 대통령은 되고, 저는 그렇게 신앙고백을 하면 안 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보훈처가 자신의 조부와 독립유공자인 문남규 선생이 동일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사실을 언급하며 "저는 이 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의 손자로서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훈처가) 법 절차에 따라 다른 분의 경우와 똑같이 처리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문 후보자는 "사퇴하겠다"는 결론으로 회견을 끝냈다. 취재진과 질의응답 없이 회견장을 나섰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문창극 총리후보 사퇴] “청문회 개최는 국회 의무인데… 與의원도 사퇴 강요”
입력 2014-06-25 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