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리그 최종전 같은 시간에 개최… 1982 스페인월드컵 ‘히혼의 수치’ 아세요?

입력 2014-06-25 02:33
“우리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16강 티켓이 걸린 브라질월드컵 G조 3차전(한국시간 27일 오전 1시)을 앞두고 독일과 미국 양팀은 주위를 의식한 듯 유독 승리를 강조했다. 미국(1승1무)은 23일 조별리그 2차전에서 포르투갈과 2대 2로 비겨 독일(1승1무)에 골 득실 차에서 뒤진 2위에 올라 있다. 27일 경기에서 양팀은 비기기만 하면 같은 시간 펼쳐지는 가나와 포르투갈(이상 1무1패)의 승패와 관계없이 나란히 16강에 오를 수 있다.

미국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독일의 요하임 뢰브 감독은 2006 독일월드컵에 독일 감독과 코치로 함께 참가한 바 있다. 일부 언론에선 양팀이 비겨 16강에 동반 진출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1982 스페인월드컵 당시 서독(현재 독일)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오스트리아에 1대 0으로 이기면서 알제리를 따돌리고 나란히 조별예선을 통과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32년 전 스페인 히혼에서 벌어져 ‘히혼의 수치’로 불리는 추악스러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알제리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세계적인 공격수 카를 하인츠 루메니게를 앞세운 서독을 2대 1로 꺾는 대이변을 일으킨다. 오스트리아에 진 알제리는 칠레를 이겨 2승1패로 조별리그를 마쳤다. 하지만 당시 조별리그 일정은 지금과 달리 알제리-칠레전 다음날 서독-오스트리아의 경기가 열렸다. 알제리는 오스트리아가 서독을 꺾거나 서독이 오스트리아를 석 점 차 이상으로 이겨주면 2라운드에 진출하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서독이 전반 10분 선제골을 넣은 뒤 양팀은 전혀 공격의지를 보이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서독 방송 해설자는 더 이상의 해설을 거부했고, 오스트리아 해설자는 시청자에게 “차라리 TV를 끄라”고 요청했다. 한 서독 축구팬은 후반 25분 경기장에 난입해 서독 국기를 불태웠다.

서독이 1대 0으로 이겨 서독 오스트리아 알제리가 나란히 2승1패가 됐지만 골 득실 차에서 밀린 알제리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가장 수치스러운 월드컵 역사의 하나로 남았다. 이 경기는 이후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치르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