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文 총리후보자 사퇴 의미 곱씹어봐야 할 때

입력 2014-06-25 02:30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자진 사퇴했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일제(日帝)의 식민 지배, 일본군위안부 등과 관련한 문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놓고 ‘친일’ 또는 ‘반민족적’이라는 야당의 거센 공격이 지속되면서 여론이 등을 돌린 데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퇴진론이 불거진 게 주요한 원인이다. 문 후보자에게 현실정치와 여론의 장벽이 너무 높고 견고했던 셈이다. 사과할 필요 없다고 했다가,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가, 머리 숙여 사과하는 등 문 후보자의 오락가락 행보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가서 국민들에게 해명하겠다고 버틸 경우 자신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정국 혼란이 극심해질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문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으나 파장은 만만치 않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에 이어 문 후보자가 물러남으로써 ‘총리 부재’라는 비정상적인 상태의 장기화가 현실로 다가왔다. 박근혜정부 2기 내각을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 매진하려던 박 대통령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문 후보자의 중도 낙마로 박 대통령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됐다는 뜻이다.

이 지경까지 이른 데에는 박 대통령 책임이 크다. 6·4지방선거에서 통합하고 화합해야 한다는 민의가 확인됐음에도 박 대통령은 종전 방식대로 ‘내 편’ 챙기는 인사를 계속했다. ‘여당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선전하자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꾸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오판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자만이 잘못된 인사로 이어졌고, 결국 문 후보자까지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얘기다. 문 후보자 자질 시비로 박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진 점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문 후보자 사퇴를 계기로 박 대통령이 권력을 나누기 바란다. 위기 국면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저렇게까지는 할 필요 없는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을 분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힐 때가 됐다고 본다. 명실상부한 책임총리제를 실시하고, 장관들에게는 권한과 함께 책임도 함께 지워야 한다. 대통령 주변에서 쓸 만한 총리 후보감을 찾을 수 없다면 야당으로부터 추천받는 방안도 검토해볼만한 시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했던 ‘연정(聯政)’까지는 어려울 테지만, 지방선거를 계기로 광역단체장 당선자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협치(協治)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잇따르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야당이 국정 운영의 일정한 책임을 지도록 새로운 협력 틀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문 후보자를 놓고 찬반 양론이 격화되면서 우리 사회의 균열상은 더욱 심화됐다. 정치권이 국론 분열의 중심에 있다. 이래선 곤란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통합을 위해 머리를 맞대길 권면한다. 국가통합 없이 국가 대개조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