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국 경제에 있어 새로운 내발적(內發的) 성장의 계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개념도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생산요소가 참여하는 경제를 말한다. 경력단절 여성, 고령자, 장애인, 청년백수까지 포함한 전인경제(全人經濟)를 실현하는 것이며 노인정, 복지센터, 마을 앞 공터까지 모두 유용하게 잘 활용되는 경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국민들 개개인의 행복증진에 도움이 되는 경제를 꿈꾼다.
지금까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과만 쫓아 왔다. 일부만 잘살고 일부만 한정된 일자리를 얻더라도 그것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을 늘려가는 것이라면 마치 옳은 일인 양 선전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낙수효과에 기대어 재벌 대기업의 성공이 마치 우리의 성공인 양 기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구조가 더 이상 우리의 생활안정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미 상식에 가깝다. 성장의 군불이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전파되지 않으며 이에 따라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도 제한되어 갔다. 이제는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러한 것을 사고할 때 경제학의 원조 애덤 스미스의 논의는 유효하다. 그는 단순히 자유시장경제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국부론’ 제1편 제1장의 제목이 ‘분업’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것이 노동생산성 향상의 중요한 원인이며,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제4편에서 전개되는 중상주의에 대한 집요한 비판도 국내 산업기반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역을 비판한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단순히 애덤 스미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5대양 7대륙을 주름잡던 산업강국 영국인들의 기본인식이었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영국의 대니얼 디포는 그의 저서 ‘영국경제의 구상’(1728년)에서 네덜란드에 대비되는 영국 경제의 강점이 바로 활발한 국내 시장에 있으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쳐 수출로 연결되는 경제구조에 있다고 강조했다. 국부의 원천은 ‘황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있으며, 일부 특권적인 상인자본의 축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경제적 참여도 확대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경제의 근간이 바로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한다.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과도한 경제적 불평등은 사람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인식,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과 평생학습 체계의 구축 필요성 등 사람 경쟁력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사고 및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둘째, ‘밑’으로부터의 사고로 전환되어야 한다. 대기업의 성장에 중심을 둘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자발성과 창의성 확대, 자영업자, 골목상권, 중소기업 활성화 등 한국 경제 하부 단위의 경쟁력 확대가 결국 대기업 경쟁력으로 발현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중앙’이 아니라 ‘지역’으로부터 사고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다수 우리의 삶과 경제활동은 지역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경제적 참여 범위를 넘어 시민참여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근로자와 단순한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무상노동의 자원봉사자이며 좋은 일에 대한 기부자이기도 하다. 지역사회 속에 존재하는 각종 선의의 자원들이 통상적인 경제활동과 잘 어울렸을 때 우리는 살 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개발연대의 영향으로 우리는 대기업의 성공, GDP라는 성과지표, 그리고 중앙정부 정책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제 바꾸어야 할 때다. 개인의 자발성을 끌어올리며 이들이 지역사회 속에서 활발히 경제적·사회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바로 내발적 성장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박근혜정부 2기에 새롭게 꾸며질 내각, 그리고 6·4지방선거 이후 선출된 지역 정치인들이 내발적 성장을 위한 새로운 정책구상을 발표하길 기대한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경제시평-김종걸] 이젠 내발적 성장 추구할 때
입력 2014-06-25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