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하상] 동세서점의 시대가 개막됐다

입력 2014-06-25 02:33 수정 2014-06-25 15:42

1842년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졌다. 이어 1854년 일본은 미국의 페리 제독과 화친조약을 맺는다. 미·일 화친조약의 부칙에는 미국과 일본은 쌍방이 무관세로 무역을 한다는 것이 들어 있었다. 요즘의 FTA를 맺은 것이다. 미국의 커피는 일본 녹차의 30배 가격, 맥주가 일본 청주의 30배 가격에 판매되었으나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일본에 하이칼라 세대 즉 서양물건 좋아하는 양풍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명품 열풍과 비슷하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에 넘치는 곡물과 양철, 가위, 공작기계 등을 일본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미국의 소비재, 산업재를 사기 위해 일본은 연간 1000만개의 금화를 미국에 지불했다. 당시 금화 한 개의 무게는 16g, 순도는 90%였다.

동북아 3국서 세계로 문명 전파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일본은 그 만회를 위해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뒤 1년 후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맺었다. 강화도 조약의 부칙에도 쌍방 무관세로 무역을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당시 조선의 관리들은 무관세가 어떠한 피해를 준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조선 백성은 부싯돌 대신 그 가격의 60배에 달하는 성냥을 사서 썼다.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가위, 양철이 들어왔고, 호롱불 대신 석유등잔이 수입되었고, 석유도 수입되었다. 조선의 경제는 이로 인해 날로 피폐해졌다. 외화 유출, 즉 금이 그만큼 빠져나간 것이다.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근대화에 나섰다. 철도, 전기, 우체국, 공병창 등이 들어섰다. 일본은 성공했고, 청국과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해 국가가 망했다. 그로부터 100여년 후, 세 나라는 다시 일어섰다. 2013년, 한·중·일 세 나라의 경제성적표는 찬란하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8조2000억 달러, 일본은 6조2000억 달러, 한국은 1조3000억 달러다. 동북아 3국의 GDP를 합치면 미국의 16조 달러를 능가한다. 유럽의 경우 EU의 GDP를 합치면 약 20조 달러. 이제 세계는 미국 경제권, 동북아 경제권, 유럽 경제권으로 삼분되었다. 그리고 브라질 인도 러시아 등이 부상했다. 이어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호주 뉴질랜드 터키 이란 이라크 경제권이 급부상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휴대폰 반도체 LED 자동차 조선 철강 건설 등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되고 있다. 위의 품목들의 최강자는 한국 일본 중국 등이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문명은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지금의 문명은 동북아 3국으로부터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과거의 시대가 서세동점(西勢東漸)이었다면 지금은 동세서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동세서점의 시대에 한국은 경제 패권을 쥘 수 있을 것인가.

'압축갈등' 해결이 한국의 숙제

2014년 한국은 좌충우돌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각종 부정부패가 드러나고, 사회는 혼란스럽다. 선진국들이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영국이 250년, 미국이 150년, 일본이 100년 걸렸다. 반면에 한국은 1961년 1인당 소득 80달러 국가에서 경제개발을 시작, 단 46년 만에 1인당 2만 달러 소득의 국가를 만들었다. 선진국들이 수백년 걸려 만든 사회 시스템을 우리는 단 50년 만에 만들려 하다 보니 그 갈등이 선진국의 몇 배에 달한다. 압축성장 이면에는 압축갈등이 있다.

이러한 갈등을 여하히 잘 해결하느냐가 바로 현재의 한국의 숙제다. 정부가 마련하려는 국가 개조론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국가 개조론이 성공하려면 국민들의 정신도 개조되어야 한다. 국가 개조론의 설계가 좋아도 국민정신이 함께 가지 못하면 힘들다. 장차 10년 후 한국이 존경받는 국가가 되고, 존경받는 국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가는 물론 우리 국민들도 이제 깊이 생각해볼 때가 됐다.

홍하상(논픽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