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강은교] 가끔 아주 낯익은 것들이

입력 2014-06-25 02:31

가끔 아주 낯익은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찬장도 그러한 것 중 하나이리라.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이런 그릇들이 있었나”라고 중얼거리며 꽃무늬가 그려진 타원형 접시를 꺼내들기도 하고, 이런 찻잔이 있었나 싶게 우아한 도자기 찻잔의 금색 테두리가 쳐진 찻잔을 꺼내들기도 한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도어에 못 보던 금이 그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혹시 누군가 문을 뜯고 들어온 게 아닌가 싶어 놀라 집으로 뛰어 들어가기도 한다. 철이 바뀌어 옷 정리를 하다가도 이런 옷이 내게 있었나, 싶게 꽤 괜찮은 티셔츠가 손에 잡히기도 하고 못 보던 스커트가 있어, 놀라 새 스커트 살 계획을 수정하기도 한다. 아마 그 옛 스커트는 한때 열심히 입었던 것이리라. 거기 얼룩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날엔가는 커피를 마시며 창 밖을 보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스커트는 영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행선지를 물었다. 나는 갑자기 내가 갈 곳이 아주 어떤 먼 곳, 낯선 동네로 생각되었다. “우리집이요”라고 나는 바보처럼 대답했다. ‘그곳이 어디냐구요?’ 택시는 그때 어떤 다리를 지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다리가 너무나 낯설었다. 첨 보는 다리 같았다. “이 다리가 아닌데요.” “그럼 어디로 가죠? ○○동은 이 다리 건너에 있는데요.” 순간 나는 내가 까마득하게 보였다. 낯익은 내가 갑자기 낯설어지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완전히 기억상실자가 되어 집으로 오는 길을 기사가 찾아주는 일이 벌어졌다.

타인도 그럴 때가 있다. 아주 낯익은 사람, 아주 낯설어 보인다. 말투가 저렇지 않았는데 하는 순간이. 그 사람의 얼굴에 저런 주름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그 사람 손 등에 저런 점이 있었던가 싶기도 한. 반면 낯선 얼굴이 갑자기 낯익게 보이는 경우도 있긴 하다. 분명 첨 보는 얼굴인데 오래전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얼굴, 또 어떤 장소에 갔을 때 거긴 분명 언젠가 와 보았던 곳인 것 같은 느낌, 그럴 때 우리는 전생(前生)을 들먹이는 것이리라. 아마 전생에 우리는 만났을 거야, 라든가 전생에 가본 곳일 거야 라는 생각도.

우리의 삶은 이러한 사소한 기억들의 조각보인가? 낯익은 것들이 낯설게 보이는 순간이 시간인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현재의 시간에 살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언제나 과거에, 또는 미래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