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 앞둔 KBS 대하사극 ‘정도전’의 정현민 작가 “민생 정치에 대한 갈증, 위정자들은 새겨야”

입력 2014-06-25 02:11
"방송 후 실시간 검색어에 극중 인물들의 이름이 오르면 뿌듯했다"는 정현민 작가. 그는 "아이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거나 오피니언 리더들이 드라마를 보고 피드백을 줄 때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효상 기자
올 상반기 한국 사회를 관통한 이름이 있다. 정도전(1342∼1398). 늙은 왕조를 종식하고 새로운 나라를 연 고려말조선초의 정치가이자 혁명적 지식인. 그 이름에 뭇사람이 열광했다. 올 들어 7권의 관련 책이 서점가에 등장했다. 6·4지방선거와 맞물려 사람들은 '우리 시대 정도전 찾기'에 나서기도 했다. 인기에 불은 지핀 건 KBS 드라마 '정도전'이었다. 극중 대사 하나하나가 곱씹혔고 정도전, 이성계, 정몽주 세 사람의 우정과 갈등은 여느 멜로보다 사랑 받았다. '정도전'을 쓴 정현민(44) 작가가 10년차의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라는 점도 인기에 한몫 했다. 역사 이야기를 통해 리얼하게 현대 정치를 빗댔다는 평가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매봉산로 KBS 미디어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이날 오전 7시에 오는 29일 방송될 마지막 회 대본을 털고 왔다는 그는 지난 1년 6개월간 그 시대를 살다 온 사람 같았다. 인간 정도전을 설명할 땐 눈빛이 반짝였고 말은 거침없었다.

-정도전을 소재로 택하게 된 이유는?

“강병택 감독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정도전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우리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큰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당시에도 민생 문제가 팽배했다. 그는 모든 화두가 민생이었던 사람이다. 오늘날 사회 양극화와 부의 편중이 심각해져가면서 민생 정치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정도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오버랩 될 거라 생각했다.”

-보좌관 출신이란 이력이 도움이 됐나?

“노동 쪽 정책을 담당하며 여당 야당을 가리지 않고 10년간 보좌관 생활을 해왔다. 보좌관이란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했고 다시 불러준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거다(웃음). 등장인물들을 실제 정치하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싶었다. 600년 전 사람이었지만 보좌관 경험은 이들을 조금 더 그럴 듯 하게 그리는데 도움이 됐다. 여야의 대립을 직접 겪으면서 논리와 논리가 충돌하는 이야기를 리얼하게 그려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치 드라마를 그리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이러니지만 사랑을 안 해 본 사람이 멜로를 더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있기 때문이다. 난 정치권을 구경해 봤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없었다. 정치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정도전’은 역사극이었기 때문에 시도하게 됐다. 처음엔 지문 한 줄을 세 시간 동안 못 썼을 정도로 헤맸다. 역사극이면서도 트렌디하게 써보자는 제작진의 의도를 잘 따라갔을 뿐이다.”

-정도전, 이성계, 이인임 등 새로운 캐릭터들을 살려냈다는 평가다.

“강병택 감독이 4년 간 준비한 작품이다. 복식, 액션, 배경 등 치밀하게 고민한 부분들이 돋보였던 것 같다. 이성계의 인간적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투리를 사용하도록 한 것은 내 아이디어였다. 둘 다 고증에 입각해야 한다는 뚜렷한 고민 하에 작업했다.”

-실제 정치인들의 모습이 극중 투영되기도 했나?

“국회에서 노련한 의원들을 많이 봤다.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고 화내거나 싸우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이인임에게 자주 드러났다. 이인임이 차를 마시고 난초를 닦는 모습 등으로 표현해보려 했다. 참모였을 때 생각했던 가장 좋은 주군의 모습은 이성계를 통해 그려봤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주군은 믿어주는 사람, 참모들을 일하게 하는 사람이다. 사료를 통해 이성계의 권력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았고 그래서 인간적인 모습을 돋보이게 하려 했다.”

-현실 정치에서도 참모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나.

“드라마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참모보단 정치가의 상이다. 우리가 정도전을 현대사회로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정치가로서 가장 훌륭한 가치를 몸소 보여줬다는 점이었다. 민생을 강조했고 또 실천했다. 민본사상은 당시 성리학자들이 모두 얘기 했던 것인데 정도전은 자신의 일생을 통해 이를 관철해내려 했다. 당대의 문제점을 잘 집어내서 대안을 가지고 헌신했던 사람은 어느 시대나 바라는 정치인 상일 것이다.”

-왜 대중에게 정도전이 사랑받았다고 생각하나?

“결국 이런 정치가에 대한 갈증이 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사생활도 깨끗했다. 첩도 없었고 조선 개국 후 자녀들을 지방관직으로 내보내는 등 가족들에게도 엄격했다. 이 시대 국민들이 느끼는 갈증을 위정자들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정치 기능 중엔 새로운 담론을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 국민들이 원하는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콘텐츠를 가지고 갈 수 있는 정치가에 대한 갈증을 느꼈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쓸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나?

“2∼3개월은 머리를 비우고 쉬고 싶다. 아직 작가로서는 시작하는 단계라 다양한 소재를 다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극을 연달아 쓰면 복제품이 될 것 같아 피하게 될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통해 정치에 대해 하고픈 얘기는 다 풀어 낸 것 같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