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거취를 둘러싼 박근혜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낼 것으로 관측됐지만 예상 밖의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총리 후보자와 함께 국가정보원장 및 7개 부처 장관 후보자들 역시 지명 이후 열흘이 지나도록 인사청문 요청 재가가 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 총리 거취 언급 없이 청와대 참모들에 임명장=박 대통령은 23일에도 문 후보자 거취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대신 국회 임명동의 또는 인사청문 절차가 필요 없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수석비서관 5명에게 임명장을 줬다. 대상자는 김 실장을 비롯해 조윤선 정무수석, 안종범 경제수석, 김영한 민정수석, 송광용 교육문화수석, 윤두현 홍보수석 등 총 6명이다. 송 수석은 제자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면서 자신을 제1저자로 등재해 연구 성과를 가로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신임 수석들과의 환담 자리에서도 문 후보자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수석들에게 “국회와 협조할 일이 많이 있다”며 “인사청문회도 있고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있어서 (국회와의) 협력을 통해 속히 잘 이뤄져야 국정이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또 “수석실부터 중심을 잡고 개혁의 동력을 잃어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버티는 문 후보자 “기다리겠다”=박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진 것은 문 후보자가 계속 버티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귀국한 21일 밤부터 문 후보자에게 ‘자진사퇴’를 설득하고 있지만 그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말이었던 21, 22일 자택에서 두문불출했던 문 후보자는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집무실로 출근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조용히 제 일을 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아직 자진사퇴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청와대와 사퇴 시기를 조율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빗나간 셈이다.
일각에선 문 후보자가 ‘대통령과 직접 소통을 한 다음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그는 그동안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명예회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 후보자가 끝까지 자진사퇴를 거부할 경우 박 대통령은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한다. 지명 철회와 임명동의안 서명 후 국회 제출 둘 중 하나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특별한 움직임을 말할 게 없다”고 했다.
◇줄줄이 늦어지는 장관들 인사청문회=문제는 문 후보자 거취 결론이 늦어지면서 7개 부처 장관들과 국정원장의 인사청문 요청도 함께 지연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8일 ‘총리·장관 후보자 문제를 함께 결정한다’고 했었다. 문 후보자와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 지명일은 지난 10일, 7개 부처 장관 지명일은 지난 13일이다. 최소 열흘 이상 아무런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이들은 ‘공중에 붕 뜬’ 형국이다. 인사청문 절차가 계속 늦어질 경우 2기 내각의 공식 출범 역시 미뤄져 국정과제 이행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야권은 계속해서 박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며 “국민 다수가 아니라고 하면 한 발짝 물러서야 한다. 먼저 잘못된 인사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김효석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이 국민과 다른 길을 가려고 하면 정치적, 사회적으로 고립돼 심각한 레임덕이 조기에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금명간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반응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문 후보자가 곧 결단을 내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문’턱에 걸려… 장관 인사청문 등 2기내각 스텝 꼬였다
입력 2014-06-24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