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관심병사니까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배려가 가득한 말이었다. 그러나 현역병 시절 소대장으로부터 이 말을 직접 들은 예비역 A씨(25)는 충격에 휩싸였다. A씨는 2011년 강원도의 한 전방부대에 배치됐다. 소대장은 A씨의 생활지도기록부를 살펴보더니 “신병교육대에서 진행됐던 인성검사 결과 ‘관심병사’로 분류됐다”고 알려줬다. 자신이 관심병사로 분류된 사실조차 몰랐던 A씨의 군 생활은 “도와주겠다”는 소대장 탓에 시작부터 꼬였다. 소대장은 번번이 힘든 훈련에서 A씨를 열외시키거나 시범훈련 등에서 빼줬다. 훈련과 작업에서 열외될 때마다 전우들의 눈총도 따가웠다. A씨는 “소심한 성격이긴 했지만 ‘특별 관리’를 받는 ‘문제아’ 취급까지 받으니 군 생활에 적응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23일 털어놓았다.
지난 21일 동부전선 육군 최전방 일반소초(GOP)에서 전우를 향해 총기를 발사한 임모(22) 병장은 A씨와 같은 관심병사였다. 관심병사는 원칙적으로 본인과 주변 동료들이 모르게 특별 관리해야 하지만 허술한 관리 탓에 공개적인 ‘낙인찍기’ 효과만 낳는다는 지적이다.
◇“쟤가 관심병사래”=2005년 발생한 경기도 연천 총기난사 사건 이후 ‘보호 관심병사 제도’가 도입됐다. 군 복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특별 관리해 근무를 원활히 하도록 돕겠다는 취지였다. 병사들은 신병교육대 전입 직후와 일병·병장 진급 시 등 세 차례 인성검사를 받는다. 여기서 군 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A(특별관리)·B(중점관리)·C(기본관리) 등급의 관심병사로 결정된다. 임 병장은 부대 전입 직후인 지난해 4월 A급으로 분류됐다가 지난해 11월 B급 판정을 받았다.
관심병사로 분류되면 지휘관들은 해당 병사를 주기적으로 면담한다. 부대원 모두 관심병사를 알 수 있는 구조다. 국방부는 해당 병사만 부르는 것을 금지하고 전체 병사에 대한 주기적인 면담을 주문하고 있지만 실제로 적용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신병교육대에서 관심병사 여부가 알려져 자대 배치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정체’가 공개된다.
관심병사에 대한 정보는 간부급들만 공유토록 돼 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병인 분대장들에게 부대원 관리 편의를 위해 귀띔하는 경우가 많다. 명백한 간부의 직무유기다. 지난해 강원도 전방부대에서 전역한 분대장 출신 B씨(24)는 “간부들이 부대 내 관심병사를 알려준 뒤 특별 관리를 주문한다”며 “다른 동료 병사들을 모아놓고 ‘잘 대해주라’고 공지하지만 이 때문에 생활관 내에서도 자연스럽게 관심병사를 빼놓고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별 관리에 오히려 고립되는 ‘관심병사’=관심병사를 바라보는 인식도 문제다. 보호 대상이 아닌 문제아로 바라본다. 힘든 훈련이나 작업에서 열외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병사들에게 미운털이 박힌다. 이달 전역을 앞둔 소대장 C씨(26)는 “힘든 훈련에서 빠지고, 간부들은 ‘잘해주라’고만 하니 부대 내에서 자연스럽게 따돌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군대에서는 약자가 괴롭힘을 당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에 적응이 더 어려워진다”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인 만큼 이들이 낙인찍히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리 전문가들은 이렇게 ‘낙인’이 찍히면 부대 내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전역을 3개월 앞둔 임 병장 역시 이런 사실 때문에 선임병사 역할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평택대 심리대학원 차명호 교수는 “계급이 올라갈수록 ‘선임병사로서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하는 점이 관심병사들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온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GOP의 경우 대대·연대·소대가 함께 훈련받는 일반 부대와 달리 소대(소초)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더 폐쇄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친한 병사들은 고락을 함께하며 더욱 더 끈끈해지고 반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더욱 철저하게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군 생활 전반에서 소극적으로 변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서울사이버대 군경심리학과 이자영 교수는 “적응을 돕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적응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이라며 “이들이 개인적인 수치감을 느끼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유나 조성은 기자 spring@kmib.co.kr
[GOP 총기 난사-기획] 주변서 다 아는 특별관리… 오히려 ‘고립’ 부른다
입력 2014-06-24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