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온실가스 다이어트

입력 2014-06-24 02:48
지구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기후변화의 원인물질인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문제는 ‘누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감축하느냐는 것이다. 첫째 질문은 온실가스의 이동성과 편재성(遍在性)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도 큰 나라들이 배출량을 늘린다면 지구상의 온실가스는 여전히 증가할 것이고, 더 흉포해진 기후변화의 피해는 대륙과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서길 꺼렸던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 산업계의 입장이 그런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누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국제적 의무감축체계 말고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언급한 기후변화 대응의 ‘다이어트 효과’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날씬해지기 위해 감행한 다이어트 덕분에 건강 증진, 생활습관 개선, 성적 상승 등 기대하지 않던 효과까지 거두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화석연료와 전기 사용을 줄이면 대기오염 감소, 국민건강 향상, 국제수지 개선 및 산업구조의 선진화 등 부수적 효과가 크다.

미국 정부는 부수적 효과를 내세워 적극적 기후변화 대응책을 최근 관철시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기후변화법에 번번이 반대해 온 의회를 우회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대기오염 물질로 간주하고 이달 초 환경보호청에 이를 삭감토록 명령했다. 획기적인 행정명령은 2030년까지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최대 30%까지 줄이고,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과 주간(州間) 배출권거래제를 실행토록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석탄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면 15만명의 어린이가 천식에 걸리지 않게 된다는 점을 내세웠다.

국내 산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부터 시행키로 돼 있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의 시행을 더 늦추자고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2010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 논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으로서 2013년부터 시행하려던 계획을 2015년으로 늦추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시행될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환경부는 저탄소 기술 개발을 서둘러 선진국의 강화된 규제에 먼저 대응하는 게 현명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건강 증진과 의료비 감소 효과를 내세우는 게 국민들에게 더 설득력 있을 것 같다. 또한 탄소세 신설이 여러 사정상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 감축의 가장 효과적 수단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