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빈민·나라사랑… 화폭에 목회를 담다

입력 2014-06-24 02:42
미군 초상화를 그려주고 교회 건립 기금을 마련한 이연호 목사.
설악산교회 수채화.
이 목사가 그린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이촌동교회. 이 목사는 전쟁 직후 피폐한 삶을 다룬 작품을 많이 그렸다.
이연호 목사
우리나라 기독교미술의 뿌리를 내리게 한 이연호(1919∼1999·사진) 목사의 생애와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강좌가 24일 오후 5시 서울 이촌로 이촌동교회에서 열린다. 한국인물전기학회가 마련한 이 강좌에선 유동식 연세대 명예교수, 최종고 서울대 명예교수가 ‘화가목사’의 삶을 얘기한다. 특히 신학자 유동식(92) 교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강단에 서는 귀한 시간을 갖는다. 그는 일제강점기 이 목사의 춘천공립보통학교 고등과(현 강원도 춘천고 전신) 후배였다.

이와함께 유 교수와 최 교수는 강좌에 앞서 지난 20일 ‘화가목사 이연호 평전’(한들출판사)을 공저로 출간했다. 이 강좌를 주관하는 한국인물전기학회는 그간 영화배우 윤인자, 음악가 안기영 등 우리 근현대사 속에 민족공동체와 기독교적 가치를 지켜온 인물을 조명해왔다. 이번 이연호 목사 조명은 99번째 강좌의 일환이다.

황해도 안악 출신인 이연호는 이촌동교회 목사로 있던 196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입선하면서 기성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앞서 그는 53∼55년 미국 로렌스대학에서 철학 전공을 하면서 동시에 이 대학 수채화가 토머스 디트리히 교수에게 사사했다. 그리고 이 해 시카고와 뉴욕 등에서 유대인 아동을 위한 캠프에 참가해 미술을 지도했다. 또 위스콘신 주 아쉬카쉬미술관 초대로 3개월 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화가’ 이연호의 작품 세계를 집중 연구한 최종고 교수는 “당시 국전 입선 자체만으로 작가로서의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으나 이 목사님은 ‘나는 평생 아마추어 화가’라며 이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며 “이듬해부터 장신대에서 기독교미술에 대해 강의하시고, 66년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를 창립하신 것에서 느낄 수 있듯 하나님 영광을 위한 작품 활동에만 역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기독교미술인협회 초대 회장을 맡은 이 목사는 당시 “과거 미술사에 있어 기독교 미술은 인류의 문화정신생활에 큰 기여를 했다”며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에도 계속돼 일반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협회 창립 멤버로 김은호 김기창 김기승 등 한국의 유명 화가들이 참여했다.

최 교수는 70년대 고 강원용 목사가 이끄는 ‘크리스천 아카데미’ 등이 마련한 강좌 등에서 이연호 목사의 설교와 강연을 들으며 교분을 나눴다.

이후 이 목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주최 ‘전국어린이 및 청소년미술공모전’ 심사위원과 성화 중심의 개인전 등으로 한국기독교 미술운동의 흐름을 이끌었다. 성화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예수상 모사를 주로 했다. 헐벗고 굶주려 눈이 퀭한 인간 예수상이었다. 그는 모사한 작품에 ‘그리스도와 숟가락’ 등의 작품명을 달았다. 이같은 렘브란트 예수상 모사는 강한 인상을 남겨 ‘한국의 렘브란트’란 별칭이 붙었다.

최 교수는 “그의 그림은 시청각 자료가 부족하던 시절, 기독교 교육 교재 삽화 등으로 활용되기도 했다”며 “특히 83년엔 KBS ‘세계의 다큐멘터리 성화, 그 발자취를 따라서’ ‘영상 다큐 성화 속의 예수’ 등의 해설을 맡는 등의 탁월한 미술 식견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화가로서의 활동 뿐 아니라 독립운동가, 빈민운동가로서의 삶도 소개된다. 춘천공립학교 학생 시절 독서클럽 상록회 활동을 하며 항일운동을 주도한 그는 소위 동맹휴학 운동을 주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4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이를 기려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옥고 이후 일본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인 가가와 도요히코의 영향을 받은 이연호는 44년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를 졸업하고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홍수 때마다 한강이 범람하여 집을 잃은 이들이 많았고 이들을 위해 사역에 나서 이촌동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빈민운동을 하며 예수 사랑을 실천했다. 이 무렵 미군 초상화를 그려주고 받은 돈으로 교회건축을 한 일화가 이촌동교회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유동식 교수는 “타고난 목회자요, 화가요, 시인이자 평생을 빈민목회에 바친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설교요 예술이다”고 회고했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