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코피노’가 국내 법원에서 자신을 버린 한국인 친부와의 혈연관계를 인정받은 첫 판결이 나왔다. 일부 한국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의식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자 부끄러운 우리의 민낯을 보여준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단독 권양희 판사는 필리핀 국적의 형제가 친부인 사업가를 상대로 제기한 인지청구 소송에서 “친생자임을 인지한다”고 판결했다. 한국인 사업가는 1990년대 후반 사업차 필리핀에 갔다가 현지 여성과 동거하면서 두 아들을 낳았지만 2004년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뒤 필리핀을 떠나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ECPAT(아동 성매매·인신매매·포르노를 근절하기 위한 국제기구)는 코피노가 최근 2∼3년 사이 1만명에서 3만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 중견 로펌들이 이미 관련 소송 9건을 진행 중이어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코피노의 아버지들은 주로 유학이나 사업차 필리핀에 장기 체류한 남성들이다. 양국 간 교류가 확산되면서 2012년 필리핀을 방문한 한국인은 100만명을 넘었고, 사업과 유학 등을 목적으로 체류 중인 한국인도 8만여명에 달한다. 1992년 베트남과 수교한 뒤 베트남 여성과 한국 남성 사이에 태어난 ‘신 라이따이한’도 1만여명에 이른다.
문제는 현지 여성을 ‘즐기고 헤어지면 그만’인 일탈 대상으로 보는 그릇된 성의식에 있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원정 성매매가 급증하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동남아 성매매 관광객 수 1위라는 오명을 언제까지 안고 갈 셈인가.
성문화를 바로잡는 일과 함께 코피노와 신 라이따이한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됐다고 해서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에서 이러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금수와 다를 바 없다. 일본이 20년 동안 일본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피노 539명이 일본인 아버지를 찾아 양육비를 받도록 하고 국적이나 취업비자 문턱을 낮춰준 것을 본받을 만하다.
[사설] 코피노·新라이따이한 더 이상 방치 말라
입력 2014-06-24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