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화 정책 폈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뼈와 살이 타는 밤’ 展

입력 2014-06-24 02:19
양아치 작가의 ‘황금산’. 서울 인왕산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암흑 속에 살면서 신세계를 기대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표현했다. 학고재 제공

영화 ‘뼈와 살이 타는 밤’을 본 적이 있는지. 1985년 개봉된 에로영화다. 1980년대 신군부는 국민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이른바 ‘3S’(Sex, Screen, Sports) 정책을 추진했다. 성적 욕구를 완화하는 정책으로 대중을 쉽게 통제하고자 했던 신군부의 의도에 따라 컬러 TV가 등장했고 에로영화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에서 5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본명 조성진·44)는 전시 타이틀을 이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 지난 주말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되풀이되는 듯한 사회 모습에 착안했다”며 “30여 년 전과 지금이 유사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각적인 것은 없지만 시스템적으로 녹아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치가 우울증에 걸려 곤란한 상황인데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참담했다는 그는 각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야간 산행을 즐겼다고 한다. 6개월간 서울 인왕산을 밤중에 오르내리며 만난 생명체들에 대한 얘기를 44점의 입체·사진·영상에 담았다. 어둠 속에서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남성이 맞닥뜨린 늑대인간, 앵두꽃, 망초, 황금산 등이 불확실한 시대를 드러낸다.

작품이 전반적으로 어둡고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것도 있어 전시장 분위기는 그로테스크하다. 시각적으로는 안정돼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교묘한 통제가 이뤄지고 자살률이 높은 지금 모습이 8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세월호 참사도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배경에는 이런 시스템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7월 27일까지 전시(02-720-152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