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유적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한 민관의 20년 가까운 노력이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
남한산성이 카타르 도하에서 22일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됐다고 문화재청이 밝혔다.
유네스코는 남한산성이 “17세기 초 비상시 임시 수도이자 당시 동아시아에서의 도시계획과 산성 축성술 등이 상호 교류한 증거”라면서 “특히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체계의 변화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지금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살아있는 유산으로 가치가 있다”는 점도 높이 샀다고 문화재청은 전했다.
◇지난한 등재 과정=한때는 산성 안에 호텔이 들어서 있는 등 훼손돼 국내에서도 그 가치가 무시되기도 했다. 18년 전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남사모)’을 만들고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온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주민들의 반대를 극복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호텔을 철거하고 행궁지를 복원하는 작업을 할 때에도, 주민들은 남한산성이 문화유산으로 인정되면 다들 쫓겨나가는 것 아니냐, 이렇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 일은 없는데 뭔가 잘못 알려졌는지…. 붙잡고 안심시키는 일이 힘들었지요.”
남사모에 모인 문화재 전문가들은 우선 행궁을 복원해야 한다고 경기도에 건의했다. 성남 하남 광주로 관리주체가 나뉜 걸 통합하는 일도 풀어야할 숙제였다.
2001년 임창렬 경기도지사가 남한산성 종합정비계획을 마련하고 행궁 복원에 착수했다. 복원 과정에서 초대형 기왓장 등 유적이 발굴되면서 국내외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2009년 김문수 지사는 경기도문화재단 아래 남한산성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본격 추진했다. 조 원장은 운영위원회 초대위원장을 맡아 매년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며 남한산성의 가치를 알려왔다.
마침내 2011년 2월 문화재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결정했으나, 그 후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주민들을 설득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남한산성의 등재가능성을 높이는 작업에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2년이 지난 지난해 1월에야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 수 있었다.
◇가치 및 숙제=남한산성은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과 방어전술의 시대별 층위가 결집된 초대형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포곡식이란 계곡을 감싸고 축성된 산성을 말한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또 그동안 ‘치욕의 현장’으로 폄하되기도 했던 남한산성의 가치도 돌아보게 한다. 조선시대에 수원 화성이나 강화도 등에도 임금이 거하는 행궁이 있었지만, 행정적인 기능을 갖추고 종묘사직까지 모신 곳은 남한산성뿐이다.
조 원장은 “일부 훼손 구간을 복원하고, 주민들과 함께 역사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 나가는 일이 앞으로 남은 과제”라고 꼽았다. 문화재청과 경기도는 11.76㎞에 이르는 성곽을 체계적으로 보수하고 올해 발굴된 제1남옹성과 성벽이 단절된 동문 주변 등도 2016년까지 정비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남한산성의 등재로 한국은 종묘, 석굴암·불국사, 제주 용암동굴 등 모두 11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도시와 城의 만남’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됐다
입력 2014-06-23 02:43 수정 2014-06-23 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