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가깝고도 먼 나라

입력 2014-06-23 02:26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일본의 한 여학생과 펜팔(pen pal)을 했었다. 전 세계 누구와도 단 몇 분 만에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다. 어렵사리 영문 편지를 쓴 뒤 빨간색과 파란색 줄무늬가 새겨져 있는 국제우편 봉투에 넣어 보냈던 경험은 퍽 풋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편지를 주고받다 1년여 정도가 지난 뒤 펜팔은 끝났다. 뚜렷하진 않지만 후지산이 더 높니, 백두산이 더 웅장하니 하는 다툼으로 시작해 역사 문제로까지 논쟁이 옮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마음에도 ‘참 일본 사람들은 억지가 심하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얘기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일본인 그 여학생도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22일은 한국과 일본 양국이 한·일 기본조약을 통해 수교를 맺고 국교를 정상화한 지 4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교 정상화 후 반세기가 흘렀지만 한·일 관계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일 기본조약은 7개조로 구성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과 부속된 4개의 협정 및 25개의 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 사실 인정 및 이에 대한 사죄가 포함되지 않아 당시 국내에서도 ‘반쪽’이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부속협정의 하나로 포함된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은 이후 각종 보상 문제에 대한 논란을 낳는 원인이 됐다.

인정과 사죄가 포함되지 않은 한계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불거지는 갈등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나마 위로가 됐던 건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한 1993년 ‘고노(河野) 담화’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9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인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村山) 담화’를 내놓았을 때는 많은 이들이 한·일 관계가 제대로 시작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불만스럽기 짝이 없는 그 위안조차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에 대해 “한·일 간 문안 조정이 있었다”며 평가절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언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도 자기 부정을 할지 모를 일이다. 가까워진 듯하지만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일본과 우리의 역사 인식에 남아 있음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