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과 어깨에 칭칭 감은 붕대가 피로 흥건하게 젖은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말을 잃었다. 입대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아들은 응급실 침대에 누워 아버지를 맞이했다. 굳은 표정으로 아버지는 아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22일 강원도 강릉시 강릉아산병원 응급실에서 A이병의 부모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동부전선 육군 최전방 일반소초(GOP)에서 21일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때 A이병은 수류탄 파편에 맞았다. 22일 0시50분쯤 이 병원 응급실로 긴급 후송됐고 오전 5시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A이병은 지난 4월 입대했다. 예정된 자신의 군 생활 중 이제 겨우 10분의 1을 보냈을 뿐이다. 군대에서 보낸 날보다 앞으로 보낼 날이 훨씬 많다. “열아홉 살밖에 안된 아들이 저런 상태라 정신이 없어요.”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들의 쾌유만 기도했다.
점심때가 되자 병원 원목실에서 가족들에게 떡을 돌렸지만 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간간이 중환자실 앞에 있는 TV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뉴스 헤드라인으로 총기 난사사고가 계속 등장하자 스마트폰으로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 아들이 언제 회복실로 옮겨질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다 새벽부터 자리를 지킨 탓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후에 “A이병이 의식을 회복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병원에는 수류탄 파편상 등으로 부상자 세 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A이병은 중환자실, 나머지 두 명은 일반 병동에서 치료 중이다. 가족 면회가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김진엽 강릉아산병원 진료부원장(내분비내과)은 “우리 병원에서 치료 중인 부상자들은 모두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로 잘 회복하고 있다”며 “환자들이 안정적이어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부상자 가족들은 하루 종일 불안감에 떨었다.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진 B하사(22)는 총알이 다리를 관통했다. 출혈이 심해 의식불명 상태다. B하사 가족들은 “원래 올 2월 제대였는데 대학 복귀를 좀 더 고민해 보겠다며 전문하사로 임관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겨서…”라며 울먹였다.
B하사는 지난 5일 전문하사로 임관하며 “6개월간 600만원을 모아서 부모님께 작은 보탬이 되겠다. 중장비 자격증도 따서 제대하겠다”는 포부를 소속 부대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병원 측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가족들은 “세월호 때도 처음엔 다 괜찮다고 했는데 그 꼴이 났다. 이번에도 그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새벽부터 부상자들이 긴급 후송되자 병원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릉아산병원에서 약 10㎞ 떨어진 국군강릉병원도 마찬가지였다. 병원 측은 정문 앞에 이중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차량 출입을 아예 통제했다. 초병 2명은 M-16 소총을 들고 경계근무를 섰다.
강릉=백상진 김동우 기자 sharky@kmib.co.kr
[GOP 총기 난사] “이제 열아홉살인데… ”말 못이은 아버지
입력 2014-06-23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