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날개를 펴고 비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19일 ‘마의 벽’으로 불리는 5만원을 넘었다. 시가총액은 36조763억원으로 현대모비스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종가는 5만700원으로 하이닉스반도체 시절인 2003년 3월 26일 기록한 최저가(136원)의 373배에 달한다. SK하이닉스 주가는 현대전자와 하이닉스 시절을 포함해 17년 동안 종가 기준으로 5만원을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난해 말(3만6800원)과 비교하면 37.8%나 뛰었다. 외국인 매수세가 두드러졌다.
20일에는 4만9400원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전문가들은 당분간 주가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낙관한다. 지난 1분기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낸 데 이어 2분기에도 1조원을 넘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어서다. 재계에서는 하이닉스가 화려하게 도약하는 배경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냉철한 판단, 과감한 투자라는 ‘절묘한 두 수’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끈질긴 설득으로 내부 반대 극복=당초 SK그룹 내부에서는 하이닉스 인수에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10년 이상 채권단 관리를 받은 하이닉스에서 미래를 찾기 어렵다고 봤다. 반면 최 회장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2009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약 1년 반 동안 반도체 공부에 몰두했다고 한다.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 등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기업인들을 만나면서 반도체에 더욱 주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초 최 회장은 그동안 가슴에 품어온 ‘반도체 프로젝트’를 경영진에게 밝혔다. 하지만 곧바로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의사결정을 할 때 토론을 중요하게 여기는 최 회장은 경영진에게 함께 공부하고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국내외 반도체 전문가를 초빙해 반도체산업 전망 등을 듣는 자리도 여러 차례 가졌다.
7개월가량 이어진 연구와 토론 끝에 SK그룹은 내부 합의에 도달했다. 2011년 7월 하이닉스 예비입찰에 응찰했다. 최 회장은 2012년 3월 하이닉스 인수 이후 경기도 이천·청주 공장을 잇달아 방문해 임직원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하며 회사 정상화에 힘을 쏟았다.
◇절묘한 시너지 창출도 한몫=막상 하이닉스를 품에 안았지만 반도체와 다른 SK그룹 계열사의 사업 사이에서 접점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다르게 생각했다. 이미 하이닉스를 다른 계열사와 연계해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묘수를 마음속에 갖고 있었다. 그는 부품인 반도체를 납품받는 곳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전자업체이고, 이 업체들은 제품을 통신회사에 납품하는 역학관계에 주목했다. 당시 하이닉스는 3단계 역학관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다. 더욱이 오랫동안 채권단 관리를 받으면서 설비·기술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1위인 삼성전자에 짓눌리고, 3∼4위였던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엘피다에 쫓기는 신세였다.
최 회장은 가장 낮은 단계의 하이닉스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SK텔레콤의 자회사가 되면 새로운 시너지가 창출된다고 확신했다. SK텔레콤에 단말기를 공급하는 전자업체가 하이닉스의 반도체를 구매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고, 이에 따라 하이닉스의 마케팅 역량과 시장 지배력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감하고 끈질기면서 기발했던 ‘두 수’는 SK그룹에 든든한 대들보를 만들어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수출액은 13조원에 달한다. 또 올 영업이익은 4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SK그룹의 사업구조는 기존 에너지·화학과 통신에 반도체가 더해지면서 안정적인 4각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SK그룹 관계자는 22일 “하이닉스 인수로 수출 기업으로서 이미지 제고, 확실한 캐시카우(cash cow·현금 창출원) 확보, 사업 포트폴리오 다양화라는 3가지 긍정적 효과를 얻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이닉스가 날개를 달 때 공교롭게도 최 회장은 교도소에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SK 내부에선 “반도체와 관련해 막대한 투자를 결정하려면 최 회장의 과감한 결정이 있어야 하는데, 경영 공백으로 자칫 투자 적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SK하이닉스 높이 날다… 화려한 비상 뒤엔 오너 뚝심·절묘한 승부수 있었다
입력 2014-06-23 02:05 수정 2014-06-23 0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