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점심시간의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현대모비스 본사 회의실. 20여명의 직원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구글이 중국 시장을 외면하고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구글의 미래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을 지나 새로운 문명이 열리는 흐름을 생각하면 구글은 오히려 이제 막 폭발적인 성장의 출발점을 지났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아마존닷컴은 소매업체로 출발했지만 어느새 첨단기술 업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온라인 소매업이라는 핵심 사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최강입니다. 우리 회사는 어떻습니까?”
이사급 임원부터 신입사원까지 구성원은 다양했다. 주장을 펼칠 땐 상사의 의견도 개의치 않고 반박했다. 이들은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현대모비스의 독서 동아리 ‘미투리’ 회원들이다. 2주마다 점심시간에 모여 토론을 벌인다. 이날은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21세기북스)와 ‘구글의 배신’(브레인스토어) 등 두 권의 책을 들고 모였다.
직장인들의 유일한 휴식시간인 점심시간을 아껴 모여서일까. 독서 토론의 열기가 후끈한 건 때 이른 더위 탓만은 아닌 듯했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갓 돌아온 AM용품영업팀 장우영 과장은 “아이를 재우고 잠자기 전까지 1∼2시간 책을 꼭 읽는다”며 “업무에만 매달릴 때는 생각 못했던 안목을 책에서 접할 수 있어 모임에 꼭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책이 좋아 경기도 용인의 기술연구소에서 서울 본사까지 찾아오는 회원도 있다.
지식·교양·활력을 목표로 한 미투리는 2010년 5월 사내 동아리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바쁜 업무 속에서도 2주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강행군을 해왔다. 미투리 회장인 정자성 AM용품개발팀 차장은 “더 많은 회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모임 시간을 퇴근 후에서 점심시간으로 바꿨는데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시간을 쪼개가며 책을 읽고, 책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교감하는 분위기가 좋다”고 자랑했다. 모시로 삼은 신발을 뜻하는 미투리는 밑동, 밑동아리에서 유추한 말이라고. 그래서 독서로 삶의 기초를 다지자는 뜻에서 동아리 이름으로 썼다는 설명이다.
미투리 모임에서는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는 물론이고 ‘생각의 탄생’ ‘임진왜란과 한·중 관계’ 같은 사회과학서, 인문서 등 폭넓게 읽는다. 이날 처음 참여한 메카부품개발팀 정준규 차장은 “책을 좋아했는데 회사생활에 쫓기다보니 혼자 독서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며 “동기유발을 위해 미투리에 왔는데 분위기가 참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또 다른 회원은 “직급과 부서가 다르기 때문에 만나서 얘기해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미투리는 밖에서도 인정받는다. 지난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후원으로 결성된 전국기업독서동아리연합회에서 미투리가 산파 역할을 한 것이다. 미투리의 창립멤버인 고동록 인재개발실장이 연합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삼성전자 이랜드 철도기술연구원 현대오일뱅크 등의 독서모임이 연합회 회원으로 가입했다. 대한민국의 더 많은 직장인들이 책읽기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일에 미투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투리의 활발한 활동에는 ‘창의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독서를 장려하는 회사 분위기가 큰 힘이 됐다. 현대모비스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네 권의 책을 선물로 준다. 또 체계적인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온라인 독서 프로그램인 ‘북러닝(Book Learning)’ 과정을 개설했다. 회사에선 수시로 직원들에게 책을 나눠준다. 지난해의 경우 2000여권의 책을 직원들에게 구입해줬다. 올해도 이미 1500권 넘게 배포했다. 현대모비스는 “지식을 축적하는 것도 업무”라고 강조한다.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책을 읽더라도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미투리의 ‘책 읽는 직장인’들은 사내에 그런 독서문화를 전파시키는 데 알게 모르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미투리를 만든 주역인 고 실장은 소문난 독서광이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신만의 속독법으로 책 한 권을 읽고 출근한다. 1년에 300권 넘는 책을 읽는다. ‘독서의 달인’이라 할 만한 그는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이라며 “함께 읽기의 힘과 토론의 힘을 기업문화에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책을 읽도록 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런 독서에서는 통찰을 찾기 힘들거든요. 스스로 책을 찾아 읽도록 독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책 속에서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얻는 창의적인 책읽기가 이뤄집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책 권하는 CEO, 책 읽는 직장-현대모비스 독서동아리 ‘미투리’] 책 함께 읽고 점심시간 열띤 토론
입력 2014-06-23 02:51 수정 2014-06-23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