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말라위에서 만난 믿음의 사람들

입력 2014-06-23 02:28 수정 2014-06-23 15:16
아프리카 말라위 상가 지역에서 만난 마리아 피리(왼쪽)씨가 이란성 쌍둥이 체달리스 치우미아(가운데)와 이노센트 치우미아를 바라보고 있다.
치무에무에 음베야(가운데)의 가족사진. 치무에무에 어머니 자넷 치우미아(오른쪽)와 형 콜른 음베야는 에이즈로 투병 중이다. 월드비전 제공
말라위까지 거리는 1만1000㎞가 넘었다. 비행기는 홍콩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경유해 말라위 수도 릴룽궤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상가(Sanga) 지역까지 낡은 지프와 승합차를 타고 500㎞ 이상 달렸다. 도로 사정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차 안에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숙소까지 도착하는 데 35시간이 걸렸다. 가벼운 운동화조차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이튿날인 11일(현지시간)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애달프고 구슬픈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주민들을 만났다. 어려운 환경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연민을 넘어서 가슴 깊은 곳에서 뭔지 모를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영원한 아기’로 살고 있는 이노센트 치우미아(6)와 그의 가족을 보면서 그런 감정이 들었다. 말라위에선 일반적으로 6∼7세가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이노센트에게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그의 키는 82㎝, 몸무게는 8㎏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생후 6개월 된 아기의 체중 정도에 불과했다. 이란성 쌍둥이 누나인 체달리스 치우미아보다 30㎝ 가까이 작았다.

이노센트의 비극은 한 살 때 시작됐다. 그는 말라리아에 걸려 엄청난 고열에 시달렸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질병은 장애로 이어졌고, 그의 신체·지적 성장은 그때 멈췄다.

어머니 마리아 피리(38)씨는 “생후 2년만 지나면 말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아들이 할 줄 아는 말은 ‘엄마’라는 한마디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피리씨는 “체달리스가 놀러 나갈 때 아들은 방에 방치되거나 내 등에 업혀 있어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이노센트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어머니 등에 업혀 있었다. 피리씨가 땅에 내려놓자 그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었다. 하지만 네댓 걸음 걷고 나서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땅에 주저앉았다. 같은 시간 쌍둥이 누나 체달리스는 공터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었다.

“의사에게 치료법을 물으면 답변은 항상 간단해요. ‘자주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아라, 아들에게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이라’고 하지만 지금 저희 집 형편에선 불가능한 얘기죠.”

피리씨 남편은 쌍둥이 남매가 태어나던 해에 집을 나갔다. 피리씨는 주운 나무를 내다 팔아 돈을 번다. 하지만 한 달 수입은 4∼5달러에 불과하다.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피리씨 이웃에 사는 치무에무에 음베야(12)의 사정도 딱하긴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2010년 에이즈로 숨을 거뒀다. 문제는 어머니 자넷 치우미아(50), 형 콜른 음베야(16)도 에이즈로 투병하고 있다는 것. 치우미아씨는 “콜른이 어떻게 감염됐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내 혈액이 콜른의 상처에 묻어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막내도 에이즈에 감염되진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맏아들과 내가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되면 막내만 남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아들은 이웃밖에 의지할 곳이 없게 되죠. 이웃과 잘 지낼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 외에도 말라위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구식 승합차를 타고 손금처럼 갈라진 산길을 달리다 보면 어디선가 애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취재진을 반겼다. 한국과 달리 낯가림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인상적이었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들 대다수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진 않았다. 말라위는 인구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인 국가다. 취재에 응한 상가 주민들은 "언젠가 주님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곤궁한 삶을 살고 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월드비전에 기부하는 개인의 소액 후원금이 이들에게는 큰 희망이 될 것 같았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던 지난 17일, 가기 싫은 출장지였던 말라위는 언젠가 꼭 다시 찾고 싶은 나라로 다가왔다.

상가(말라위)=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