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몸은 조조 진영, 마음은 유비, 관우 같아서는 안된다”… 中, 뤄관 퇴치 속도전

입력 2014-07-01 02:57 수정 2014-07-01 21:20
*뤄관(裸官)=가족이 해외 거주하고 재산 빼돌리거나 빼돌릴 위험 큰 관리

"가족을 국내로 불러들이든지, 좌천을 감수하든지 아니면 조기 퇴직을 선택하라."

중국 광둥(廣東)성은 최근 가족이 해외에 머무르고 있는 '뤄관(裸官·벌거벗은 관리)' 866명을 무더기로 좌천시키면서 '3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관리들이 자진 신고한 재산 및 가족관계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취한 조치다. 광둥성은 중국 '차세대 지도자' 후보군 중 선두 주자로 꼽히는 후춘화(胡春華·51)가 당 서기로 있는 곳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3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게 한 것을 놓고 언론은 '광둥 모델'식 뤄관 척결 방법이라고 부른다. 광둥 모델은 전국 다른 지방에서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뤄관이 좋았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경보(新京報)는 이에 대해 “당 중앙은 ‘더 이상 몸은 조조(曹操) 진영에 있으면서 마음은 한(漢)나라에 가 있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썼다. 동한(東漢) 말 유비가 조조 군대에 패했을 때 유비의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 조조 진영에 투항한 관우가 줄곧 유비만을 생각했던 고사를 빗댄 것이다.

중국 국영 기업인 궈타이쥔안(國泰君安)증권의 천겅(陳耿·사진) 총재는 지난달 9일 전격적으로 퇴임식을 갖고 물러났다. 궈타이쥔안증권은 상하이 시정부 통제 아래 있는 중국 내 최대 증권회사다. 중국 언론은 그가 뤄관이기 때문에 사직했다고 전했다. 그의 아내와 세 자녀는 모두 외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

중국 금융계 간부의 경우 가족이 해외에 살면서 자녀는 외국학교에 다니는 게 흔했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당 중앙은 올해 초 발표한 ‘당정영도간부 선발임용업무조례’를 통해 등용해서는 안 되는 6종류 간부를 명시했는데, 거기에 뤄관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올 춘제(春節·설)를 고비로 상당수 간부들이 가족을 국내로 불러들였다.

천 총재의 아내도 당시 돌아왔다. 그러나 천 총재는 세 자녀에 대해서는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도록 하지 않았다. 광둥성의 ‘3가지 선택지’는 그에게도 제시됐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선 조기 퇴직 외에 그에게 남겨진 카드는 없었다. 그는 중국 증권업계 고위직 가운데 뤄관이라는 이유로 물러난 첫 번째 인물이다. 그의 퇴임은 광둥성에 이어 다른 지역에서도 뤄관 뿌리 뽑기에 착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중국 내에 뤄관이 과연 몇 명이나 있는지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다만 2012년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당시 전인대 대표인 중앙당교 린저(林喆) 교수가 “언론 보도를 보면 1995년부터 2005년 사이에 배우자 및 자녀가 외국에 사는 관리는 118만명에 달했다”고 밝힌 게 뤄관의 대략적 규모로 통용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해외로 도피한 공무원은 4000여명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뤄관이 빼돌린 돈은 최대 2000억 위안(약 3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02년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관영잡지 반월담(半月談)은 해외로 빠져나간 돈이 50억 위안(약 82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액수는 기소된 사건만 포함시킨 데다 10여년 전 집계여서 지금은 이보다 수십 배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정부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뤄관 단속에 나서기 시작했다. 국무원 직속기구인 국가예방부패국은 그해 처음으로 뤄관 관리 감독을 중점 추진 업무로 정했다. 개정판 ‘영도간부 개인 신고 관련 규정’은 처음으로 간부 자신은 물론 배우자와 자녀의 부동산, 유가증권, 주식, 기금 등도 신고하도록 했다. 그러나 뤄관 수는 그 뒤에도 줄지 않았다. 가족 상황을 신고할 때 사실을 왜곡해도 이를 확인할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는 등 허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광둥성의 경우에도 2012년 뤄관은 당·정의 중요한 직책을 맡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발표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해당 보직에 배치되기 전에는 뤄관이 아니었지만 배치 이후 뤄관이 된 간부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탓이다.

이에 따라 뤄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공무원을 상대로 ‘재산공시제도’를 실시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는 재산과 가족상황 등에 대한 신고만 받고 이를 공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행정학원 쉬야오퉁(許耀桐) 교수는 “공무원 개인별 신고 내용에 대해 지난해부터 표본조사를 하기 시작했으나 그 비율이 얼마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 확인을 위한 기술적인 수단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3가지 선택지’를 제시하는 광둥 모델에 대해서는 당 최고 지도부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대 염정건설연구중심 리청옌(李成言) 주임은 “뤄관 문제는 그들이 발을 붙일 수 없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