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 개방을 위한 최종 의견 수렴 절차인 공청회가 열렸지만 정부와 농민들의 간극만 확인했다.
“쌀 관세화 유예를 연장할 실익이 없다”는 정부의 주장에 농민단체들은 “왜 시도도 해보지 않고 불가능하다고만 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경기도 의왕시 농어촌공사에서 ‘쌀 관세화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를 개최했다. 정부는 공청회장 주변에 경찰을 대거 배치하고 사전 예약을 통해 방청권을 배부하는 등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여기에 방청권을 얻지 못한 일부 농민들이 공청회장 진입을 시도하면서 고성이 오가는 등 소란이 일었다. 쌀 시장 개방이 국내 쌀 농가들의 생산기반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위기감과 농정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것이다.
주제 발표에 나선 송주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쌀 관세화 유예를 더 이상 연장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했다. 쌀 관세화 유예를 얻어내려면 쌀 수출국에 의무 수입량을 늘려주는 등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1999년 국내 소비량의 1%였던 의무 수입량은 2004년 4%로 늘었고 올해는 8%까지 늘어났다. 지구상에서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필리핀뿐이다. 필리핀은 지난 19일 관세화 유예를 5년 연장시켰다. 의무수입량을 2.3배 늘리고 쌀 수출국과 개별협상을 통해 다른 품목을 양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상황을 국내에 도식적으로 적용하면 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2019년엔 국내 쌀 소비량의 20%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국내 쌀 생산 기반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게 정부의 우려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 일부 농민단체들도 조건부로 관세화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협상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쌀 시장 개방을 추진한다고 반발한다. 박형대 전농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며 “쌀 관세화 종료가 곧바로 관세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관세화 유예조치가 종료되면 곧바로 시장이 개방된다는 입장이지만 협상하기에 따라 현상 유지를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정부가 협상을 통해 이익을 지키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쉬운 길만 따라가고 있다”며 “협상 결과와 관세화 중 유리한 것을 선택하면 되는데 협상의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정부는 6월 말까지 쌀 관세화에 관한 최종 입장을 결정해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관세화 쪽으로 방침을 굳히고 이날 쌀 시장 개방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김경규 농림축산부 식량정책관은 “관세화 유예는 쌀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관세화 결정 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향후 모든 FTA에서 쌀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이슈분석] “쌀 관세화 유예 실익없다” VS “왜 협상도 않고 개방하나”
입력 2014-06-21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