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인 1910년 경상남도에서 태어난 김모(60·여)씨의 아버지는 1938년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됐다. 사할린 북부의 포로나이스크 탄광에서 광부로 일했다. 사할린은 제정 러시아 시절 유배지로 악명을 떨쳤던 섬이다. 그는 강제징용 도중 동향인 경남 출신의 한인 여성과 결혼했다. 일본은 당시 조선인 4만3000여명을 사할린에 끌고 가 군수공장 등에서 노역을 시켰다.
이국(異國)에서의 삶은 고달팠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광복이 찾아왔지만 부부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일본 국적을 상실한 한인들은 소련에서 외국인으로 분류됐다. 부부는 1954년 딸 김씨를 낳았고 거주지를 수차례 옮기며 사할린을 떠돌았다. 그동안 일본인 수십만명이 전원 귀환했지만 무(無)국적자인 김씨 가족은 소련에 남았다.
러시아 국적을 끝까지 거부한 아버지는 1977년 숨을 거두며 김씨에게 ‘러시아 국적을 받아선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 어머니도 6년 후 세상을 떠났다. 김씨 남매는 모두 11명이었는데 3명은 일찍 사망했다. 무국적자인 김씨는 러시아에서 저소득층 보조금 등의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취업에도 불이익을 받았고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었다. 김씨는 적십자를 통해 영구귀국을 하고 싶었지만 1945년 광복 이후 태어난 김씨에게는 불가능했다. 달리 한국 국적을 찾을 방법을 몰랐던 그는 ‘사할린 희망 캠페인단’의 도움을 받아 2012년 8월 ‘한국 국적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한국 법원에 냈다.
법무부는 소송에 앞서 김씨가 국적판정 절차를 거치면 손쉽게 대한민국 국적을 확인받을 수 있으므로 소송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박연욱)는 “무국적자인 김씨가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국적판정 절차를 이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원고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강요할 수 없다”고 소송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사할린 무국적 한인들은 조국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전제했다. 이어 “김씨의 부모는 강제 동원되지 않았다면 제헌헌법에 의해 당연히 한국 국적을 취득했을 것”이라며 “자녀인 김씨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게 맞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소송을 대리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사할린 징용 피해자 후손이 법원에서 국적을 확인받은 첫 사례”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른 무국적 동포들에게도 정당한 권리가 인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이국땅서 무국적자로 고달픈 삶… 사할린 징용 후손 국적 확인訴 첫 승소
입력 2014-06-21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