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 책임·현실 사이… 포스코의 선택은

입력 2014-06-21 02:39
포스코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동부그룹이 구조조정 매물로 내놓은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패키지를 인수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얘기다. 포스코는 두 매물에 대한 실사를 지난달 말 마쳤다. 곧바로 인수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내부 검토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는 현실과 책임 사이에서 포스코의 고민이 깊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현재 위기상황이다. 최근 국내에서마저 신용등급이 하락했고, 2분기 실적 전망도 부정적으로 나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철강 공급과잉 탓에 앞으로 수년간 실적도 장담하지 못하는 처지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지난 3월 14일 취임 일성으로 재무건전성 회복을 외쳤다. 지난달 기업설명회에서는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기도 전에 수익성이 의심스러운 매물이 눈앞에 놓였다. 포스코가 맞은 엄혹한 현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포스코는 국가경제적 차원에서 ‘책임’도 느끼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정부가 포스코에 지운 책임이다. 포스코 입장에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매물은 매력적이지 않다. 인천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현재 포스코가 만드는 것과 뚜렷한 차이가 없다. 석탄화력발전 사업권을 가진 동부발전당진도 수익성은 기대되지만 꼭 잡아야 하는 건 아니다. 포스코에너지는 최근 동부발전당진보다 규모가 큰 석탄화력발전 사업권을 가진 동양파워를 인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가 두 매물의 인수를 검토해온 건 산업은행의 권유 때문이다. 정부는 ‘철강계 맏형’으로서 책임감을 느낄 것을 포스코에 요구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포스코가 인수 가격을 더 떨어뜨리기 위해 시간을 끈다고 해석하지만 포스코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포스코의 결정은 민영화 15년째를 맞는 이 회사가 정부의 영향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전임 정준양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으나 정권이 바뀐 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권 회장은 지난 4월 1일 창립기념일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태준 명예회장의 묘소를 차례로 찾았다.

21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권 회장은 24일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권 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재무구조 개선과 해외 신용등급 A등급 회복 등을 강조할 것”이라고 20일 전했다. 그가 현실과 책임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