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90) 화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살아있기는 한 걸까. 천 화백의 근황과 생사에 대한 의구심이 일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천 화백은 1998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후 소식이 끊겼다. 그동안 미술계에서는 지난 10여년간 천 화백을 만났다는 사람이 없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대한민국예술원은 회원인 천 화백의 생사여부 논란이 잇따르자 얼마 전 큰딸 이혜선(70)씨에게 근황 확인을 위해 의료기록 등을 요청했다. 그러자 이씨는 명예훼손이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예술원은 “회원(현재 21명)들은 월 180만원씩 수당을 받는데, 천 화백의 경우 생존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올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예술원은 천 화백이 거주하는 뉴욕의 총영사관에도 확인을 부탁했으나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예술원 측에서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자 이씨가 오히려 천 화백의 회원 탈퇴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예술원은 천 화백 본인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퇴 처리는 하지 않은 상태다.
뉴욕 총영사관이 지난 3월 25일 이씨와 통화한 내용에 따르면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현재 이씨 자택(뉴욕 맨해튼)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의식은 있으나 말을 하거나 활동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씨는 천 화백의 생존여부를 질의하는 것에 대해 매우 격앙돼 있었으며, 예술원 회원 사퇴를 조속히 처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씨는 “본인과 보호자가 아닌 사람에게 환자 상태를 알려주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 화백의 종친이자 어릴 적 친분이 있는 재미 한인화가 천세련씨,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는 천 화백의 사위(둘째딸의 남편)도 이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천 화백의 근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 화백은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내며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한 대표적인 여류화가다.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여 한국 현대미술을 널리 알린 공로로 1978년 예술원 회원이 됐다. 그런 그가 한국을 떠나 큰딸 이씨가 거주하는 뉴욕으로 가게 된 것은 1992년 불거진 ‘미인도’ 사건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당시 기획전을 열면서 자체 소장품인 ‘미인도’를 포스터에 실었다. 그러자 천 화백은 “이건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미술관 측은 미술계 인사들로 구성된 감정위원회를 열어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천 화백은 “내가 낳은 내 자식도 몰라보겠느냐. 이런 한국에서는 더 이상 활동하기 싫다”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천 화백이 ‘미인도’를 가짜라고 주장한 것은 집 근처 목욕탕에 들렀다가 이 작품 포스터를 보고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었다. 급기야 ‘미인도’를 자신이 베꼈다고 주장한 위조범이 경찰에 붙잡혔으나 혐의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등 사건이 미궁에 빠지자 천 화백은 미국행을 결심했다. 1998년 채색화와 스케치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끝내 한국을 떠났다.
천 화백이 10년째 의식불명 상태인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생사여부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으니 의문이 증폭될 수밖에. 미스터리는 큰딸 이씨가 풀어야 한다. 살아있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생존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천 화백은 한 개인의 어머니를 넘어 공인이자 한국 현대미술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
[내일을 열며-이광형] ‘천경자 근황’이 궁금하다
입력 2014-06-21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