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무적함대

입력 2014-06-21 02:55
탐험의 시대인 16세기 말 세계 최강의 해상국은 스페인이었다. 오스만제국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지중해 가톨릭 해상국가들이 조직한 신성동맹의 핵심도 스페인이었다. 스페인 함대는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함대를 격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패배를 모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무적함대(Armada)’다. 스페인어로는 ‘위대하고 가장 행운이 있는 함대(Grande y Felicisima Armada)’라고 불렀다.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한 스페인은 유럽은 물론, 북아프리카 중남미에 걸친 거대한 식민지를 통치했다. 당시 스페인왕 펠리페 2세는 세계 통일까지 노린 야심가였다.

스페인 독주에 제동을 건 나라는 영국이었다. 펠리페 2세는 마침내 1588년 무역 패권을 놓고 영국과 일전을 벌인다. 무적함대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130척에 달하는 대규모 함대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좁은 해협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가 이끄는 영국은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뛰어난 기동력으로 적 함대를 마음껏 유린한다. 함대 3분의 2가 괴멸된 스페인은 대패했다. 스페인은 이후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서막을 열게 된다. 근 20년 동안 이어온 무적함대의 위용도 그렇게 막을 내린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무적함대는 21세기 축구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다. 스페인 축구는 탁구공이 왔다갔다 한다는 뜻의 ‘티키타카’라는 세밀한 패스 플레이로 2008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전성기를 열었다. 이어 2010년 남아공월드컵, 유로 2012까지 제패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대미문의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이라는 역사를 쓰자 호사가들은 400여년 전 침몰한 무적함대가 축구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고 평했다.

하지만 무적함대도 오래가지 못했다. 월드컵 2연패의 꿈을 안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했으나 네덜란드(1대 5) 칠레(0대 2)에 완패하며 출전 32개국 중 가장 먼저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2011년 9월부터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페인의 몰락은 가히 충격적이다. 무적함대 시대가 정말로 종말을 고하는 걸까.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