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웃지 않는 죄

입력 2014-06-21 02:50
어려워진 회사를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던 지인이 있었다. 몇 년을 고생하며 겨우 회사를 세우게 되어 한숨 돌리게 되었는데, 어느 날 회사에서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가 “그전에는 잘 웃으셨는데 요즘은 웃으시는 걸 볼 수가 없다”고 하더란다. 그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일 때문에 정말 소중한 것을 잃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새삼 주위를 둘러보니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줄었고 집에서 역시 웃음소리가 나지 않더란다.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는데 내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죄를 지었구나.’ 그는 자신이 웃지 않은 죄,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잃게 한 죄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노라고 했다. 한 번도 웃지 않은 것을 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지인의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기뻐할 일도 웃을 일도 없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는가’ 하고 웃지 않는 죄를 합리화시킨다. 그런데 바울은 사방이 막힌 암담한 감옥에서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했다. 기뻐하거나 웃는 것은 의지적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실험한 것이 있다. ‘당신은 웃음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침울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었다. 실험은 목적을 숨긴 채 진행되었다. 한 그룹은 연필을 ‘이’ 하고 물어 웃는 얼굴 모습을 만들었다. 또 다른 한 그룹은 입술을 삐죽이 내밀어 ‘우’ 하고 연필을 물어 화가 난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만화를 보게 했다. 결과는 웃는 모습으로 만화를 본 쪽 사람들이 화난 표정을 짓고 만화를 본 사람들보다 즐거워하며 만화가 재미있다고 평가를 했다.

웃기로 작정할 때 기뻐진다는 것이다. 강의차 지방 교회에 간 적이 있었다. 짧은 시간에 급속히 부흥한 교회였다. 비결을 묻는 내게 목사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성도들에게 웃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잘 웃는 사람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다. 웃을 일 있는 세상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웃어야 할 것 같다. 웃지 않는 죄를 짓기 전에.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