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의 문학산책] ‘사랑의 사막’의 빈방

입력 2014-06-21 02:32

문학의 정글에는 사랑에 대한 작품이 주된 수종(樹種)을 이룬다. 그것이 정글인 이유는 대부분 현대 문학 속에는 삶이 파괴되는 사랑, 인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파행적인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왜 그토록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문학을 사로잡는가.

사랑은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매우 이례적인 순간, 타자와 자아의 차이가 예외적으로 소멸되는 경이로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적 같은 순간은 소설에서도 삶에서도 드물게만 존재할 뿐이다. 바로 예외성에 문학이, 독자들이 이끌리는 것이다.

이 오아시스적 사랑은 그래서 사막에 둘러싸여 있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그 사랑은 자주 소멸적이다.

현대적 사랑의 사막에 처한 인간의 고독에 대해 프랑수아 모리악만큼 미세하고도 적나라하게 얘기할 줄 아는 작가도 드물다. 작가에게 일찍이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안겨준 소설 ‘사랑의 사막’에도 대서양에 맞닿은 황량한 랑드 지방의 거친 바람과 비가 이따금 휘몰아친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지방도시 보르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는, 정체성을 찾지 못한 애정결핍의 고등학생 레이몽, 존경받는 학자이자 의사로 중년의 위기를 겪는 레이몽의 아버지, 그리고 이 부자가 서로 다른 계기와 이유로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한 마리아 크로스라는 여인이 있다.

작품은 깔깔한 모래처럼 도저히 만나지지 않는 가족 관계를 그려내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의 주인공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지만, 부자의 부양을 받고 살기에 지탄을 받는 추문의 마리아 크로스다. 어린 아들을 잃고 가끔 주치의와 부양자의 방문을 받을 뿐, 도시 외곽의 빈집에서 홀로 살고 있는, 커튼 쳐진 방안의 여인.

성스러움과 도덕적 무관심, 정체성에 대한 정열적인 추구와 자기 포기, 육체적 욕망과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라는 이중의 갈등이 이 인물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다. 작가의 여러 작품에 그 잔상을 남기는 마리아 크로스는 사랑에 목마른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을 대표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사실 작품 속의 어느 인물 하나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오히려 피하고 싶은 인물들 안으로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씩 더 깊이 빨려 들어간다. 작가가 인물들에 던지는 독특한 시선 때문이다. 이것이 모리악 작품의 힘이고 매력이다. 심리주의 작가라는 수식이 따르지만 사실 그는 매우 영적인 작가에 속한다.

그가 인물들을 바라보는 지점, 그가 인물들을 파악하는 깊이에는 다른 어느 작가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영적인 민감함이 있다. 어느 작가가 모리악만큼 자신의 인물들을 사랑할까. 그들이 놓여 있는 영혼의 주소가 얼마나 황량한지 모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 인물들. ‘그들이 불쌍한 만큼 나는 그들을 더 사랑한다’고 작가는 말한 바 있다.

이 연민의 시선이 욕망에 흔들린 20대의 마리아 크로스를 고독한 황무지에서 빼내어 자신의 부양인과 마침내 가정을 이루게 한다. 과거와 결별한 안정된 40대 여인으로 변모시킨다.

마리아 크로스를 혼란스러운 하루살이의 삶에서 벗어나게 한 작품 속의 한 인물이 저 구석에 숨어있다. 마리아의 의붓아들이 된 베르트랑으로 작품에 잠깐, 단 두 번 등장할 뿐이다. 그것도 한 번은 그의 빈방이 대신한다. 단 세 줄로 묘사된 그 방의 모습은, 마리아 크로스가 그 방의 주인을 통해, 그때까지 열렬히 추구해온 ‘순결한 사랑’을 발견했을 것임을 추정하게 한다.

이 사랑을 발견할 때 사막은 끝난다. 그 사랑에 대해 작가는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치 기도를 하기 위해 꾸며놓은 듯한 이 방’에서 ‘순결한 사랑의 흔적’을 알아보지 못하는 레이몽 같은 사람이 있다. 그와 같은 많은 이들이 이 준비된 빈방을 스쳐지나간다. 작가는 바로 사랑의 사막의 끝에 놓인 이 빈방으로 읽는 이를 초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작가가 자기를 비우고 숭고에 가장 무한히 접근하는 집필의 순간, 집필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방인지도 모른다.

최윤 (소설가·서강대 교수)

◇최윤 약력:프랑스 프로방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강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나코는 없다’로 이상문학상(1994) ‘회색눈사람’으로 동인문학상(1992)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