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구원’ 나선 文… “안중근 존경하는데 왜 친일파냐”

입력 2014-06-20 04:00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9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자신의 집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의 집중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문 후보자는 서류가방을 보여주면서 “저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해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19일 사퇴 의사가 없으며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반드시 가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여야는 물론 청와대로부터도 자진사퇴 ‘올코트 프레싱’을 받고 있음에도 물러나지 않고 ‘마이 웨이’를 고수하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문 후보자가 사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히며 배수진을 치고 나서면서 ‘대통령 부재정국’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주말까지 여권과 문 후보자가 대치하는 모양새는 계속될 전망이다.

문 후보자는 자신이 ‘나인 투 식스’(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라고 예고한 것처럼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자신의 집무실에서 나와 퇴근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동안 취재진의 질문 2∼3개에 짧게 답했던 여느 퇴근길과는 달랐다. 그는 별관 로비에 선 채 무려 20여분간 발언을 이어갔다. ‘작심 로비회견’이었다.

그는 “현대 인물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안중근 의사님과 안창호 선생님”이라며 “나라를 사랑하셨던 분을 가슴이 시려오도록 닮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분들을 정말로 존경하는데 왜 저보고 친일이다, 반민족적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지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는 말도 했다. 이어 안 의사가 재판을 받은 중국 뤼순 감옥과 재판정을 둘러본 소감을 바탕으로 쓴 과거 칼럼을 읽었다. 서울 남산의 안중근기념관에 헌화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 후보자는 “제가 너무 흥분했다.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고 내일 또 여러분 뵙겠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그의 거칠고 투박한 ‘퇴근길 메시지’는 분명했다. 자신의 역사관은 친일에 뿌리를 두지 않고 있으며, 절대로 인사청문회 전에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행보는 과거 교회 및 대학 강연에서 자신이 한 발언이 공개되면서 ‘식민사관’ ‘친일사관’ 논란이 불거진 뒤 부정적 여론이 확산됐고,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사퇴 불가피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출퇴근 때 청문회 준비를 하면서 느낀 소감을 한가지씩만 말씀드리려 한다”고 말해 이 같은 방식의 해명을 계속할 것임을 내비쳤다. 자신을 후임 총리로 낙점한 박 대통령마저 임명동의안 재가 검토 방침을 밝히면서 궁지에 몰리자 ‘셀프 구원작업’에 들어갔다는 인상까지 들었다.

문 후보자는 앞서 오전 집무실로 출근하면서도 ‘여권 쪽의 압박이 거세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밤 사이에 (입장) 변화가 없다. 저는 어제 말한 것처럼 오늘 하루도 제 일을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