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한탕’에 빠진 고교생들

입력 2014-06-20 02:46

브라질월드컵 열기 속에 10대 청소년들마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도박판’에 뛰어들고 있다. 배당금을 높이려고 같은 반 학생들이 한 명에게 돈을 몰아줘 베팅하는 ‘반 토토’까지 성행한다. 불법 사이트이다 보니 배당금을 받지 못해도 신고조차 할 수 없어 교육당국의 대책이 시급하다.

한국과 러시아의 월드컵 경기가 열린 18일 서울 서원동에서 만난 고등학생 오모(18)군은 “우리 반 친구가 선배 명의로 가입한 도박 사이트에서 한국이 1대 0으로 이기는 쪽에 걸었는데, 실제 1대 0이 됐다가 6분 만에 1대 1로 바뀌어 3만원을 잃었다”며 “돈 불려서 나한테도 나눠주겠다더니 다 날렸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모(18)군도 “같이 축구하는 형들을 통해 사설 사이트를 알게 됐다”며 “베팅 방식도 어디가 우승하는지, 누가 골을 넣는지 등 엄청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군은 “한 경기에 몇 골 넣는지에 베팅하는 항목도 있다. 한 경기 평균 득점이 2.5골인 경우 경기 결과가 1대 1이면 ‘언더(평균 이하 득점)’로 판정돼 1.8배의 배당금을 받는 등 흥미로운 방식이 많다”고 설명했다.

‘반 토토’는 돈이 많지 않은 학생들이 적게는 5000원부터 많게는 몇 만원씩 모아 스포츠 도박 경험이 많은 친구에게 ‘판돈’을 몰아주는 것이다. 고교생 박모(17)군은 “우리 학교에선 반마다 학생 30명 중 적어도 4∼5명은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 같다”며 “많이 하는 반에서는 아예 ‘반 토토’를 한 뒤 스마트폰으로 도박 사이트에 접속해 실시간 배당금을 확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돈을 땄다고 해도 결국 딴 것 이상으로 잃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오군은 “처음엔 40만원씩 따는 애들도 있었는데 결국엔 100만원을 잃더라”며 “따는 건 ‘찔끔찔끔’인데 잃는 건 한순간”이라고 말했다. 이군도 “10명이 한꺼번에 하면 9명은 다 날리고 1명 정도 운 좋은 애가 딴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두 번 돈을 잃고 그만두는 학생도 있지만 학원비나 교재비 등을 투자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철없는 고등학생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어느 학교의 누가 고배당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식의 소문이 끊임없이 퍼지고 있어서다. 특히 우후죽순 생겨나는 불법 도박 사이트는 주민등록번호 없이 계좌번호만으로 가입이 가능해 사실상 학생들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

불법 사이트여서 ‘먹튀(먹고 튄다는 뜻의 은어)’도 많다. 점수를 맞힌 이가 ‘환전’을 요청해도 계좌로 돈을 보내지 않고 버티다가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사용자 계정을 아예 없애는 식이다. 이군은 “어떤 친구는 20만원 걸고 70만원 정도 땄는데 환전을 요청한 뒤 다음에 접속하니까 ‘없는 아이디’라고 나왔다”며 “같이 처벌될까봐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19일 “불법 스포츠도박은 금전 피해를 봤어도 모두 ‘피의자’가 된다.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며 “업체들이 기업화하며 스포츠도박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경찰 입장에선 일일이 단속하기에 인력의 한계를 느낀다”고 털어놨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