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으로 몰린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퇴 시점을 놓고 여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적극적으로 방어 논리를 만들어 엄호했던 새누리당조차 이젠 ‘침묵’을 넘어 ‘적극 압박’ 모드다. 문 후보자의 아군이 사라진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든 거센 후폭풍이 불어닥칠 태세다.
◇靑, 시간 지날수록 득보다 실=청와대로서는 이제 문 후보자를 차기 총리로 밀어붙이기에 벅찬 상황이다. 정치적으로 득보다 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통과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새누리당 내 반발 표를 감안하면 재적 과반 이상의 표를 얻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순방 중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으로부터 이 같은 당내 분위기가 박 대통령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전날 박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21일 이후 문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재가 여부를 검토한다고 밝히자 일종의 ‘자진사퇴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요지부동인 문 후보자 본인이다. 그는 청문회 준비와 ‘예비 총리’ 수업에 전념하며 오로지 명예회복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여권은 노골적으로 “총리 후보자가 공직 경험이 없어서 대통령의 ‘이심전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집을 부린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스스로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다. 최악의 정치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외통수다. 임명 철회는 곧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허점을 박 대통령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사퇴론을 들고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은 ‘세월호 민심’을 해결하려다 집권 2년차 국정운영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타격을 입게 된다.
◇여당, 재보선 앞두고 속앓이=여당이 ‘문창극 보호막’을 걷어낸 이유는 ‘괜히 본회의 통과도 안 될 사람을 인사청문회까지 부쳐서 야당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정국 주도권 향배의 고비가 될 7·30재보선마저 청와대발(發) 악재 때문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문 후보자 사퇴를 요구하진 않지만 ‘미니 총선’ 급으로 커진 재보선에서 패배하면 야당에 국정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다는 위기감이 감지된다.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이자 유력 당권주자인 서청원 의원은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19일 전당대회 출마선언에서는 “문 후보자가 물러나는 게 나라와 국민,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정말 바람직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야당, 이젠 다른 후보자로 전선 확대=새정치민주연합은 문 후보자뿐 아니라 박근혜정부 2기 각료 후보자들을 향해서도 검증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아예 “자질이 부족한 후보자를 다 사퇴시키고 내각을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지경이다.
새정치연합은 문 후보자 낙마는 기정사실로 여기고,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와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조준선을 옮기는 모양새다. 한정애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적폐를 척결하겠다더니 적폐의 덩어리들로 2기 내각을 꾸린다 한다”고 했다.
추가 의혹도 연일 터뜨린다. 박홍근 의원은 송광용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서울교대 총장으로 재직하던 2007∼2011년 이 학교 부설 기관인 평생교육원으로부터 1400만원의 불법 수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송 수석이 2012년 8월 교육부 감사에서 이 사실이 적발돼 경고조치를 받았는데도 행정심판까지 청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액 반납했다는 것이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文카드’ 접어야겠는데… 바짝바짝 속 타들어가는 여권
입력 2014-06-20 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