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한부 총리 55일째·국정원장 30일 공석… ‘멈춰선 정부’

입력 2014-06-20 04:57

'55(식물 국무총리 업무 수행)+30(국정원장 공백)'. 사의를 표명한 국무총리가 두 달 가까이 국정을 이끌고,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장이 한 달이나 자리를 비우면서 국정운영에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안보실장은 국방장관을 겸임하는 어정쩡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후임 총리들은 연이어 낙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개각 및 국회 원구성 협상도 늦어지면서 대한민국은 총체적인 난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의 '식물총리' 체제 벌써 두 달=정홍원 국무총리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을 지고 지난 4월 27일 사의를 표명했지만 20일 기준으로 55일째 업무를 수행 중이다. 정 총리는 18∼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 참석해 답변을 했지만 일부 여야 의원들이 총리에게 질의조차 하지 않는 민망한 풍경이 벌어졌다. 어차피 물러날 사람인데 물어봐야 뭐하겠느냐는 것이다.

교체가 확정된 현오석 경제부총리 역시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완화와 관련해 "부채 자체를 줄일 수도 있지만 소득을 늘려 부채의 상환능력을 높여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지만 발언에 무게는 없었다.

국정공백의 가장 큰 이유는 인사 실패와 더딘 개각 때문이다. 정 총리에 뒤이어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로 낙마했고, 문창극 후보자는 지난 10일 지명됐지만 역사인식 논란이 벌어져 아직 국회에 임명동의안이 도착하지 않았다. 정치권은 문 후보자의 낙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 새 총리 후보를 지명해야 하고, 국회 인사청문 절차가 20일쯤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식물총리 체제는 석 달 이상 계속될 수 있다.

국정원장은 30일째 비어있고, 내각도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남재준 전 원장의 사표를 수리한 뒤 지난 10일 이병기 전 주일대사를 후임으로 지명했지만 후속 절차는 깜깜무소식이다. 최근 악화된 남북 및 한·일 관계 등을 감안하면 국정원장의 공백은 국력에 마이너스다.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3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중폭 개각을 단행했지만 청와대는 19일까지도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국방부 장관을 겸임하고 있고, 주요 부처들은 기본 업무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본격적인 개각설이 돌았기 때문에 부처들의 업무공백 기간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길다는 지적이다.

◇당·정 한 달째 안 열리고, 원구성도 미적미적=행정부가 갈피를 못 잡는 가운데 여의도 정치권도 함께 공전하고 있다. 우선 새누리당은 지난달 22일 이후 당정협의를 안 열었다. 6·4지방선거의 영향도 있지만 당·정이 제대로 돌아갈 구조가 아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19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국정감사 실시 기간 및 상임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 중이다. 특히 국감의 경우 7·30재보선을 앞두고 있어 여야가 민감하다. 원구성 협상이 늦어지다 보니 국회 운영에도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18일 본회의 인사말을 통해 "세월호 참사 이후 '국회가 바뀌겠지' 하는 국민 가슴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며 여야 지도부에 원구성 협상 마무리를 촉구했다. 여야는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 역시 기관보고 일정도 합의하지 못해 연일 진통을 겪고 있다.

엄기영 김경택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