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한국기업평가가 포스코에 대한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면서 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포스코는 20년간 AAA(1등급)를 유지해 온 대표적 우량기업이기 때문이다.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차 SK텔레콤 KT 등 1등급 보유 대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 자체가 초유의 일이었다. 그런데 눈길을 해외로까지 돌리면 포스코의 등급 강등은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포스코에 대한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평가는 Baa2(9등급·무디스), BBB+(8등급·스탠더드앤드푸어스), BBB(9등급·피치) 등에 불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내 3개 신평사(1등급 2곳, 2등급 1곳)와 7∼8단계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격차는 포스코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19일 CEO스코어가 지난해 국내 100대 기업 중 국내와 해외에서 모두 신용평가를 받은 33개 기업의 신용등급(지난달 기준)을 조사한 결과 NICE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국내 3개 기관이 내린 기업들의 신용등급은 평균 ‘AA+(2등급)’이었다. 그런데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등 3곳이 준 등급 평균은 5단계나 낮은 평균 ‘A-(7등급)’에 불과했다. AAA(1등급)를 1로 놓고 등급이 낮아질 때마다 숫자를 하나씩 높이는 방식으로 수치화해보면 국내 기관의 평균 등급(1.6)이 국제기관 평균 등급(6.8)보다 24%(전체 22단계 등급 중 5.2 단계) 정도 고평가돼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국내 신평사의 ‘등급 인플레’는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지나치게 우호적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신평사는 기업 경쟁력 평가 시 국내 경쟁력만 따진다거나 채무상환 능력 평가에서도 기업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 대기업의 특수성 등을 함께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현상의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다는 지적도 높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국내 기업이 해외 국채시장에서 낮게 평가되는 탓도 있지만, 평가 수수료가 국내 신평사의 주 수입원이고 대기업집단의 입김이 평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평가 대상이면서 동시에 일거리를 주는 ‘갑’의 위치에 있는 현실에서 국내 신평사가 독립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 문제는 지난해 동양사태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신평사들은 동양 계열사들의 법정관리 시점에 이르러서야 신용등급을 급격히 낮췄고, 이 같은 뒷북 조정으로 채권 투자자들의 비난이 커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금융감독원은 국내 세 곳의 신평사에 대한 특별검사에 착수했고, 검사 결과 신평사들이 수주를 위해 피평가업체에 호의를 제공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최근 3개사에 중징계 방침을 사전 통보했다. 다음 달 중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중징계가 확정되면 신평사들의 지나친 ‘등급 퍼주기’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이투자증권 김익상 연구원은 “그동안 최고 등급 지위를 누린 포스코의 신용등급이 내려갔다는 것은 다른 업종이나 기업들도 각오하라는 압박으로 봐야 할 것”이라면서 “안 좋은 실적에 맞지 않게 높은 등급을 받은 기업들의 등급 조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대기업에 최대 8단계 ‘등급 퍼주기’… 못믿을 신용평가사
입력 2014-06-20 0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