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부자들 “기부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 받쳐주네”

입력 2014-06-20 02:58

중국에는 백만장자가 300만명에 육박하지만 이들의 자선기부액은 초라한 수준이다. 중국인이 유난히 인색해서일까. 미국 CNN은 중국 부자들이 기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19일 보도했다. 부자들이 조금씩 기부에 눈을 뜨고 있지만 신뢰할 만한 모금기구가 적고 기부 관련 세제혜택도 미미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미국의 자선기부 총액은 3160억 달러(321조8800억원)인 반면 중국은 129억 달러(13조1400억원)에 불과하다. 자선단체 수도 미국은 150만개, 중국은 50만개로 큰 차이가 난다.

미국 비영리 조사기구 콘퍼런스보드의 앙케 슈라더 연구원은 “중국 기업인들의 부(富)에 대한 인식은 축적에서 분배 쪽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전반적인 기부 여건은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기부 규모가 확대되려면 세법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중국 정부는 아직 관련법 제·개정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선 자선단체를 만드는 것도 어렵다. 등록 절차가 까다롭고 설립 이후에도 당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미등록 상태로 있는 기구가 많다. 미등록 단체는 투명성이 낮아 기부자 유치에 애를 먹는다. 사기꾼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아예 개인용 자선재단을 세우는 부자들도 있다.

중국에는 상속세가 없기 때문에 기부 시 상속세 감면혜택을 통해 기부 활성화를 꾀하는 것도 어렵다. 기부단체와 관련된 잇단 추문도 기부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중국의 적십자사 격인 홍십자회는 2008년 원촨(汶川) 대지진 때 막대한 구호성금을 모았지만 기부금 처리가 불투명해 지탄을 받았고, 2011년엔 ‘궈메이메이(郭美美) 스캔들’로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다. 궈메이메이라는 젊은 여성이 자기가 홍십자회 간부라면서 호화 스포츠카 등 사치품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사건이었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중국의 빌 게이츠’를 꿈꾸는 알리바바(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창업자 마윈(馬雲) 회장은 미국 증시 상장을 앞두고 지난 4월 30억 달러 규모의 공익신탁을 설립했다.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디엔위엔은 “중국사회에서 기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사건”이라고 호평했다.

후룬(胡潤)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이 600만 위안(9억8100만원) 이상인 중국인은 전년보다 10만명 증가한 290만명이며, 1억 위안이 넘는 슈퍼리치는 2500명 늘어난 6만7000명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