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수니파 무장세력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의 거친 공세를 견디지 못한 이라크 정부가 18일(현지시간) 미국에 공습을 공식 요청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 공습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면서도 '행동'을 할 경우 의회 승인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라크 정부군과 ISIL이 '돈 되는' 정유소 확보를 위해 공방을 벌이는 동안 사이버 세계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 공습 요청=이라크 정부가 결국 미국에 공중 폭격을 해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호시야르 제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라크 정부는 양국 안보협정에 따라 테러단체 ISIL을 공습할 것을 미국에 공식 요청했다"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에도 지원을 부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민주·공화당 지도부과 회동해 이라크 개입 수준을 논의했다. 미치 매코넬 공화당 원내대표는 회동 후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에 취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해 의회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전날의 '신중모드'에서 다시금 군사 개입 쪽으로 무게가 쏠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미국이 공습에 쉽게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은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해 "ISIL 등 수니파 무장세력에 민간인이 섞여 있어 (공습 시) 정확한 표적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회동에서 "여전히 군사적 대안을 고려 중이지만, 공습보다는 이라크 정부군에 대한 지원 방안을 우선 검토 중"이라고 말한 것으로 참석자들이 전했다. 미국은 또 시아파인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에게 수니파와 쿠르드를 아우르는 통합정부 구성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유소 공방(攻防)=BBC는 ISIL이 소위 돈이 되는 정유소, 발전소 등을 공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유소에서 정제한 에너지는 휘발유나 발전소 연료 형태로 국내에서 소비된다. 정유소를 쥐고 있으면 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전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전력이 태부족인 이라크에서 발전소 역시 정유소만큼 '돈줄'이 되는 핵심 시설이다.
ISIL은 18일 새벽 북부 살라헤딘주 바이지에 있는 이라크의 최대 규모 정유소를 공격했다. 박격포와 기관총을 동원해 불시에 공장 내로 진입했다.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250㎞ 떨어져 있는 이 공장은 이라크 전체 원유 생산량의 10∼25%를 처리한다. 하루 30만 배럴가량이다. 바이지 정유소의 중요성을 알기에 이라크 정부군도 결사항전의 각오로 정유소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튿날까지도 정유소를 놓고 양측의 치열한 교전이 지속됐다.
이라크 정부 관계자는 "현금과 자산을 포함한 ISIL의 자금력은 20억 달러(20조원)로 추정된다"며 "모술을 점령한 것도 주요 은행을 통해 용이하게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정유소에 이어 ISIL의 표적이 될 게 뻔한 남부지역의 다국적 석유기업들은 철수 채비를 하고 있다.
◇온라인 전투=정부군과 ISIL은 사이버 세계에서도 맞붙었다. ISIL은 지난 15일 티크리트를 비롯한 5개 지역 이상에서 1700여명의 이라크군을 처형했다며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이 담긴 사진 수십장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이에 맞서 이라크 정부도 10개 인터넷 공급업자에 ISIL이 장악한 주에 대한 인터넷 접속을 끊으라고 지시했으며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의 접속이 전면 차단됐다. 또 정부 지침에 따르지 않을 경우 국가안보 차원에서 처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정부 공세로 17일 이라크 지역의 인터넷 트래픽은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인터넷 접속 통계기관인 아카마이 테크놀로지 측은 밝혔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가 사이버전에서 승리했다고 말하긴 이르다. 완벽하게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 시리아나 이집트와는 달리 이라크는 인터넷 기반 시설이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쿠르드자치정부에 설립된 뉴로즈 텔레콤의 경우 인터넷이 터키와 연결돼 있다. 이라크 정부의 영향이 미치지 못한다. ISIL 측이 이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 포린폴리시가 보도했다.
이제훈 백민정 기자,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parti98@kmib.co.kr
“ISIL 공습해 달라”… 이라크 정부, 美에 공식 요청
입력 2014-06-20 04:09 수정 2014-06-20 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