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북한의 월드컵 열기

입력 2014-06-20 02:41
북한이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은 세계 축구사의 6대 이변에 속한다. 예선 1차전에서 소련에 0대 3으로 패했으나 2차전에서 칠레와 1대 1로 비긴 북한은 3차전에서 세계 최강 이탈리아를 1대 0으로 격파했다.

당시 북한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불과 165㎝로, 180㎝인 이탈리아 선수들과 맞붙기 위해 ‘사다리 전법’을 구사했다. 사다리 전법이란 볼이 공중에 뜰 경우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세 선수가 몸을 받치고 상·중·하의 높이로 치솟아 제공권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8강전에서 포르투갈을 만나 3대 5로 역전패하긴 했지만 북한의 기량과 체력은 가히 세계적 수준이었다.

북한 축구는 70년대 이후 남한 축구가 발전을 거듭한데 반해 국제무대에서 거의 잊혀져버렸다. 반짝 빛을 발한 것이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이다. 44년 만의 일로 사상 두 번째였다. 그 대회에서 남한이 1승1무1패로 16강에 진출했으나 북한은 3패를 기록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선 본선 티켓을 따내지 못했다.

현재의 북한 축구 실력은 FIFA 랭킹 100위권 밖일 정도로 국제 수준과는 격차가 크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당국과 주민들의 관심은 매우 높다. 통일부에 따르면 조선중앙TV가 브라질월드컵 경기를 연일 녹화 중계하는가 하면 기념우표까지 발행했다. 평양 거리 곳곳에는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대형 전광판이 등장했다.

북한이 월드컵 경기를 TV로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과 북한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2012년 7월 합의에 따라 월드컵 중계권을 무상으로 제공받았기 때문이다. 남한의 지상파 방송이 송출한 영상을 재편집하는 방식으로 녹화 중계하고 있다. 북의 TV 영상을 보면 남한 지상파 영상 왼쪽 위에 있는 스코어보드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오른쪽 위에 자체 제작한 스코어보드를 배치해 남한 방송사 로고를 가리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대한민국-러시아전이 끝난 지 만 하루가 훨씬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주민들의 관심이 적지 않을 텐데 말이다. 북한은 오는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로 했다. 스포츠 교류는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의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 TV가 홍명보호의 선전 소식을 주민들에게 적극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