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文 후보자 거취 청와대가 빨리 결정하라

입력 2014-06-20 02:50
중앙아시아 3개국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제출 여부를 귀국 후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후보자의 역사관 논란이 없었다면 진작 국회에 제출됐을 동의안이다. 정홍원 총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지 두 달이 돼가는 상황에서 이보다 급한 일이 없다. 그런데도 굳이 이동하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귀국 후 동의안의 국회 제출 재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선을 그은 것은 문 후보자에 대한 신임을 접었다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문 후보자에 대한 반대 여론은 시나브로 거세지고 있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계, 법조계, 사회단체는 물론이고 새누리당의 분위기도 심상찮다. 국무총리는 장관과 달리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 의석 분포상 새누리당에서 몇 표의 반란표만 나와도 인준이 불가능하다. 이미 소장파 의원들에 이어 친박·친이계 좌장인 서청원·이재오 의원 등이 ‘문창극 불가론’에 힘을 보태고 있어 표 대결을 하더라도 동의안이 통과될 확률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박 대통령이 입을 정치적 타격은 상상 이상이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되고 임기 3년 이상을 남겨두고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면 국민에게 약속한 국가 대개조는 시작도 못하고 좌초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 문 후보자에게 자진사퇴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오랜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한 문 후보자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문 후보자는 “사퇴할 생각이 없다”고 버티고 있다. 그는 19일 “전혀 그런(여권의 사퇴 압박)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본인 주장대로 자신의 말과 글이 과장돼 억울한 심정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정을 고려해 청와대로부터 ‘부적격’ 시그널을 받았으면 그만두는 게 공복이 되고자 하는 이의 올바른 자세다. 문 후보자의 버티기는 자신을 믿고 발탁한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버티는 문 후보자나 손쉬운 지명 철회를 놔두고 모양새나 신경 쓰는 청와대나 거기서거기다. 가뜩이나 ‘수첩인사’라는 비판이 비등한 마당에 대통령 스스로 인사 잘못을 인정하는 지명 철회는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총리 인사가 늦어지면서 국정 공백이 예상외로 길어지고 있다. 지금은 모양새에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말이다. 게다가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린 몇몇 장관 후보자와 청와대 수석들에 대한 여론 또한 악화되고 있다.

부적격 판단이 섰다면 자진사퇴를 기다릴 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지명을 철회하고 새 인물을 찾는 것이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의 임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온갖 적폐를 해소해야 할 막중한 사명을 앞에 두고 인사 문제로 갑론을박할 겨를이 없다. 대통령의 신속한 결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