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한장희] 착한 경제가 답이다

입력 2014-06-20 02:22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일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르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능가해 소득 불평등을 가중시킨다는 주장을 담은 ‘21세기 자본론’.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가 쓴 이 책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세습 자본주의의 폐해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공감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해서는 국내 경제 관료들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퇴임을 앞둔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정말 나빠졌다는 것을 확인시켜줘서 (21세기 자본론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고, 그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대안이다. 피케티가 제안한 ‘글로벌 부유세’에 대해 현 부총리는 “(미국 등에선) 해법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역시 뾰족한 대안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요즘과 같은 정부 형태에선 해답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동안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했고, 그 결과 재정능력이 풍부하지 않다. 다른 예산을 줄여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도, 납세자를 쥐어 짜 세금을 늘리는 것도 간단치 않다.

그렇다고 기업은 성장하는데 고용은 줄고, 경제는 발전하는데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을 그대로 놔둘 수만은 없다. 돈을 더 벌기 위해 과적을 일삼다 벌어진 세월호 참사가 말해주듯 한국형 천민자본주의는 이제 국민의 생명마저 앗아가고 있다.

정부의 힘만으로 부족하다면 시장과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키워 기업이 성장하면 고용이 늘고 취약계층까지 성장의 온기가 전해지는 경제구조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그래서 주목받고 있는 게 사회적기업이다. 경제적 가치와 양극화, 빈부격차, 환경 파괴와 인간성 파괴 같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극복하는 사회적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사회적기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회적기업은 영리활동을 하는 동시에 취약계층에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등 사회목적을 추구한다.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는 게 아니라 정승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자’는 기업들이다.

고무적인 것은 가능하면 가치 있는 일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에 소셜벤처 창업동아리가 늘고, 지난해 열린 소셜벤처 경연대회의 경쟁률이 28대 1에 달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이런 움직임은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찾는 합리적 소비에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기업의 제품을 선호하는 윤리적 소비로 트렌드가 옮겨가는 현상과 맞물려 ‘착한 경제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는 기대를 키워주고 있다.

사회적기업 인증기업은 2007년 7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된 이후 6년 만인 지난해 말 1000개를 돌파했다. 또 인증을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의 면면도 기대치를 높여주고 있다. 수익금을 빈곤층 지원에 쓰기 위해 직접 출자해 햇빛발전소를 짓고 있는 경남도민들, 장애인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위해 취약계층을 고용한 대전의 위즈온 등 지방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커가고 있는 기업들은 희망 그 자체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부족한 국민들의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식과 턱 없이 모자란 지원이다. 삼성전자 한 기업이 2012년 한 해 쓴 사회공헌 비용이 2450억원에 달하는 반면 정부의 지난해 사회적기업 지원 예산은 1550억원에 불과했다. 또한 많은 대기업들과 정부기관이 사회적기업 제품 구매를 꺼리고 있다.

한장희 경제부 차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