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스타는 부진을 겪다가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팀을 구해낸다.
‘국민 타자’ 이승엽은 2000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2008 베이징올림픽까지 대회 내내 부진에 빠져 있다가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제몫을 해내며 짜릿한 감동을 안겼다. 1할대 타율에 허덕이던 이승엽은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에서 일본 투수 이와세 히로키를 상대로 우월 역전 투런포를 날렸다.
준결승 경기가 끝난 뒤 이승엽이 “너무 미안해서…. 너무 부진해서…. 후배들한테 미안해서…”라고 울먹이던 장면은 아직도 팬들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다.
홍명보호의 두 남자도 ‘축구의 이승엽’을 꿈꾸며 창끝을 벼리고 있다. 공격수 박주영(29)과 김신욱(26)이 그들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역대 월드컵 본선 2차전 승적은 4무4패. 무승의 2차전 징크스를 깨주길 바라는 국민들을 위해 이들은 19일(한국시간) 누구보다 먼저 브라질 포스두이구아수의 훈련장을 찾았다.
◇믿음에 보답하는 남자=박주영은 지난 18일 쿠이아바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H조 조별리그 1차전에 원톱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장했다. 그러나 골은커녕 하나의 슈팅도 날리지 못했다. 결국 후반 10분 이근호와 교체됐다.
박주영은 러시아전에서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는 팀플레이에 집중했다. 홍 감독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공격수로서 한 차례의 슈팅도 날리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주영은 공격에 특화된 선수이기 때문에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 특유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러시아전에서 비긴 한국은 조별리그를 통과하기 위해선 알제리전(23일 오전 4시·포르투 알레그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홍 감독은 알제리전에서 공격적인 전술을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 박주영이 수비 부담을 떨쳐버리면 더욱 활발한 공격을 할 수 있다.
박주영은 U-20 대표팀 시절인 2005년 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05 카타르 8개국 초청 청소년 축구대회 준결승전에서 알제리를 상대로 혼자 2골을 터뜨려 한국의 2대 1 승리를 이끈 바 있다. 국민들은 박주영이 9년 전 짜릿했던 추억을 되살려 알제리전에서 시원한 골을 펑펑 쏘아올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민들은 박주영이 믿음에 보답하는 남자라는 사실을 경험한 바 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일본과의 3∼4위전을 앞두고 있던 박주영은 플레이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팬들의 아우성 때문에 심경이 복잡했다. 박주영은 스위스와의 조별예선 2차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이후 갑자기 부진에 빠졌다. 그러나 어느 경기보다 중요했던 한·일전에서 일본 수비수 4명을 제치고 결승골을 꽂아 넣었다. 병역 연기 논란에 휘말렸던 자신을 옹호하며 런던에 데려온 홍 감독에게 보은한 것이다.
홍 감독은 자신의 선수 선발 원칙까지 깨고 ‘애제자’인 박주영을 또다시 브라질로 데려왔다. 박주영은 때가 되면 자신의 진가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선수다.
◇알제리전의 비밀병기=키 1m96의 장신 공격수 김신욱은 알제리전의 ‘비밀병기’다. 알제리가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제공권 싸움에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김신욱은 K리그에서 가장 잘나가는 공격수 중 한 명이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6골로 득점 부문 2위에 올라 있다. 특히 머리로만 통산 34골을 터뜨려 K리그 역대 최다 헤딩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김신욱은 훈련을 마친 뒤 “벨기에의 골 장면은 봤다”며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기회가 온다면 골을 넣도록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김신욱을 후반전 조커로 사용해 골을 노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홍 감독은 그동안 김신욱을 아껴 온 것에 대해 “우리의 전력을 상대국들에 굳이 알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포스두이구아수=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믿음에 보은하는 남자’… 다시 한 번 날자
입력 2014-06-20 03:13